언제 적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셨는지 아시는가?
갈라디아서 1장 1-5절
< 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
“세속을 상징하는 애굽 왕자병에 걸린 우리들은 단지 애굽 사람일 뿐”
- 들머리(발단)
애굽에서 왕자였던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얼마 후 광야 한 켠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께서는 왜 애굽이 아닌 광야에서, 왕자 신분이 아닌 도망자(방랑자) 신분이었을 때에 모세를 만나셨을까?
하나님의 현존을 본 모세는 두려워하지만(출3:6),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출3:6)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되새기라고 하듯이 줄곧 반복하신다(출3:15, 16, 4:5 이후 계속해서 신약까지).
이 소개를 이렇게 본다. ‘나는 하나님이야. 내가 준 약속(창12:3, 7, 17:7, 18:18, 22:18, 갈3:8)을 아주 잘 믿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의 하나님이다.’ 그 약속을 꼭 붙들던 그 믿음, 내가 기뻐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하나님, 그분께서 모세를 만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을 그렇게 만나신 것이다.
- 주제(전개)
하나님께서 언제 적부터 ‘우리 아버지’(갈1:4)이셨는지 아시는가? 예수님께서 존재하셨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었기(갈3:26) 때문이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언제 적부터 계셨는가? 영원 전부터 계셨다(요1: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리 아버지이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주신 약속이다. 약속이란 너희 같은 자녀들을 ‘한 자손’(갈3:8)을 통해 하늘나라(하나님나라, 영생)로 데려오겠다(갈3:16, 4:7, 5:21)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우리들 아버지께서 계신 집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녀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것이다.
- 전개(위기)
그래서 애굽에 있던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꺼내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애굽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또한 애굽에 물든 이스라엘은 더욱 만만치 않는다. 애굽을 굴복시키기도 힘들지만 애굽에 묶인 이스라엘은 더욱 버겁다.
왜냐하면 애굽은 그냥 굴복시키면 그만이지만, 애굽 정신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애굽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사람임을 설득시켜야 할 뿐 아니라 그들 마음에서 애굽 정신을 씻겨내고 복음 진리(하나님 언약백성)로 거듭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증거(절정)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애굽 정신(갈1:4)이 무엇이겠는가? 애굽 또는 세상의 온갖 ‘부패와 악함과 욕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장 심각한 문제가 죄를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애굽 사람인 이스라엘은 애굽(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함몰된 정신 상태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가 그들 조상의 하나님을 생각해내어 고통을 호소했다(출3:7). 그럴지라도 그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소개받기 전에, 자기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손 한 사람’에 대한 언약 내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기다렸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도 없었다.
이런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셨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죽여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손 한 사람 그리스도까지도 죽여 버렸다. 그러고는 유대교를 만들었다.
- 마무리(결말)
애굽정신에 함몰된 이스라엘은 이렇게 마음이 굳어있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는 마음이 닫혀 있고, 세상흐름에 대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민해 있는 것 또한 현재 우리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세요”(계22:20)가 없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가 왕자 신분에서가 아닌 도망자(방랑자) 신분에서 그를 만나셨는지 좀 감이 온다. 애굽 왕자병 걸린 우리들은 단지 애굽 사람일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