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구원과 이슬람교 구원의 차이
<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하나님은 다르지 않다고 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이 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슬람도 하나님을 믿는다?
이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알라’(Alla)로 표현하지만, 그것은 엘로힘이나 God을 가리켜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엘로힘은 히브리어이고, 알라는 아랍어이며, 하나님은 우리말이다. 명칭이 중요하지만, 명칭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번역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믿는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가? 명칭만 다를 뿐 실제는 같은가? 기표만 다를 뿐 의미도 같은가?
이슬람은 그렇게 가르친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고 기독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경전(經典)인 꾸란(Al-Quran) 29장 46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계시된 것(꾸란)과 너희에게 계시된 것(성경)을 믿노라. 우리의 하나님(알라)과 너희의 하나님은 같다. 우리는 모두 다 그 분께 순종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너희’는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지칭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꾸란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꼭 기독교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슬람을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
이슬람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다.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꾸란 2장 163절에 나와 있다. 언뜻 보면 제대로 된 신앙처럼 보인다. 제1계명에 매우 충실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도 성령님도 믿지 않는다. 예수님과 성령님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라고 여긴다.
왜 이렇게 믿는가?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한 분이실 뿐, 다른 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아브라함, 모세, 무함마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자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인물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꾸란 4장 171절에 잘 나와 있다. “성경의 백성들아, 너희들의 믿음에 열광하지 말라. 하나님에 대해 진리 외에는 말하지 말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 메시아는 하나님(알라)의 예언자(사도)이니 그분께서 마리아에게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혼을 보내셨다. 그러니 하나님(알라)과 그분의 예언자들(사도들)을 믿고, 삼위일체(Trinity)는 말하지 말라. 너희가 그친다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하나님(알라)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이슬람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같은데, 우리가 잘못 믿는다고 본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
과연 그런가?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실 뿐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한 분 하나님이 서로 다른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이 위격은 모두 하나님이다.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은 장로교회에 속한 유초등학생들이 배워야 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6문답에 잘 나와 있다.
제5문: 하나님 한 분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습니까?
답: 오직 한 분뿐이시니,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십니다(신 6:4; 렘 10:10).
제6문: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位)persons가 계십니까?
답: 하나님의 신격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계시는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며, 본질이 같으시고, 능력과 영광은 동등하십니다(요일 5:7; 마 28:19).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성자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외의 다른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1계명이 가르치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에는 성자, 성령이 포함되지 않는다. 성자, 성령은 성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시다. 제1계명을 제대로 지키려면 오히려 성자와 성령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이슬람이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번역어와 같은 또 다른 번역어인 ‘알라’이지만, 그 ‘알라’는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다. 같은 이름이지만 사실은 다른 이름이다.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자유지만, ‘알라’를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구원에 대해 다루면서 왜 하나님인가 예수님이 아니고?
기독교의 구원과 이슬람교의 구원의 차이에 대해서 다루면서 왜 예수님을 다루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다루고 있는가?
흔히 사용하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예수님만 믿고 다른 위격이신 성부와 성령은 믿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일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예수님을 한낱 선지자와 예언자 정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도 결국은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된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가르침
3대 공교회 신경 중 하나인 아타나시우스 신경(The Athanasian Creed)은 제일 첫 문장에서 “구원 받기를 바라는 자는 그 누구든지 다른 무엇보다도 공적(=보편적)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장에서 ‘공적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적 신앙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삼위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 일체이신 삼위를 예배하되, 그 위격들을 합성하지 않으며, 실체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28번째 문장에서 “그러므로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는 이와 같이 삼위일체를 깨달아야 합니다”라고 고백한다.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 구원 받는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잘못되다보니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슬람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저 예언자일 뿐이다. 꾸란 5장 19절은 “하나님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입니다 라고 말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이니…”라고 가르친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그다지 의미가 있지 않다. 이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은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건이 아니다. 예언자에 불과한 예수님이 죽은 것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의 신성과 중보자직, 십자가 사건의 중요도에 있어서 다른 믿음을 보이는 이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식의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이슬람의 구원관
이슬람은 죄 지은 자 스스로가 회개와 참회를 통해 유일신인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으로써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즉 이슬람은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의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꾸란 23장 102-103절에는 “저울눈이 더 무거운 자는 행복을 찾을 것이요, 가벼운 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저울눈’이란 사람의 선한 행위를 행한 정도를 무게로 측정했을 경우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가늠할 저울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것은 선한 행위이다. 이슬람에서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이다. 이처럼 이슬람교의 구원은 기독교의 구원과는 다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슬람교에는 구원이 없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알라’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슬람교는 자신들이 기독교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제 아무리 성경을 받아들이고, 천지창조를 믿고, 아브라함을 믿는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삼위일체에 근거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받는다.” 곧 ‘믿음’이 중요하고,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바르게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헛되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오 또한 동시에 사람이시며,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되, 삼위일체를 믿어야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구원이 있다.
마치는 말
이슬람 신자와 교리와 문화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들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구원과 우리의 구원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의 구원의 차이의 출발은 다름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삼위일체를 분명히 믿고 가르쳐야 한다. 삼위일체에 근거해 하나님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가르치고 성령을 가르치며 구원을 가르치고 믿어야 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문답에 있으며 사도신경에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성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