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떡볶이를 타고..
< 신순화 사모, 목인교회 >
개척교회를 시작할 땐 사명자의 삶인 양 어떤 고난도 고통이 아닌 감사뿐이어서 방긋방긋 미소로 우아한 사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년, 5년 정열을 쏟았건만 7년이 지나도 처음 시작했던 원룸 20평 예배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슨 일만 생기면 언제나 내 탓으로 돌리는 습관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자발적 아픔이니 말할 수 없는 자책의 여왕이지만, 겉으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해맑은 미소 복면 미소 사모의 인생이었습니다. 갱년기가 되니 병원의 도움을 1년간 받으면서도 빨리 나아서 교회 일을 해야지 하는 강박과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유혹이 싸우는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책과 자포자기로 강박증 갖게 돼
어느 날, 중년 여인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동 고층에서 떨어지며 세상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그 장면이 큰 충격으로 다가와 스스로 이상한 속삭임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순화야! 너도 따라가! 마음 한 번만 먹으면 이 고통의 늪에서 해방될 수 있어……”
나름 홀로 갈등해보지만 내안에 주님의 음성이 더욱 크게 들려옵니다.
“사랑하는 딸아, 그런 마음으로 힘내서 살아봐. 내가 있잖아.”
용기를 얻어 한 달간 쉬던 교회로 돌아가 겨우 예배만 참석하고 나 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 밖으로 나갑니다. 낮엔 해님과 데이트로 이 산 저 산으로 헤맬 뿐 아니라 교회만 생각하면 두통이 시작되니 자꾸만 밖으로 나갈 수밖에요.
사단은 날마다 흔들어댑니다. 절망이랑 낙심은 동무하자며 속삭임이 시작됩니다.
“안되잖아! 절대 안되잖아! 서울의 개척교회는 선교지보다 더 힘들다는데 그 사모가 어디 쉽니? 그 만 포기해! 그 정도 했으면 된 거야! 8년 잘 견딘거야! 이미 없어진 교회들은 3년, 5년 때 자발적 인사이동으로 포기 했잖아! 장목사는 내가 다른 방범으로 시도해 볼게!”
주님의 음성보다 사단의 음성이 더 달콤했기에 누군가 밀면 밀릴 준비가 확실하게 되었을 때 불현듯 사랑이 밀려옵니다.
교역자 부부모임에 세미나를 하는데 박영선 목사님은 강연을 마치고 사모들에게도 질문의 시간을 주셨는데 저는 저돌적으로 질문했습니다.
“돈 잘 벌고 직장 생활 잘 하는 집사가 로마서 설교 말씀 듣고 은혜 받아 합신에 들어가게 하시고 교회 개척까지 하게 하시어 개고생 하고 있는 사모들에게 어떤 말씀으로 위로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엉엉 울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날 교역자 모임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그해 중서울 노회는 박 목사님의 배려로 울릉도까지 다녀오는 놀라운 은혜를 누렸습니다. 또한 그 당시, 교역자 회장님이신 안두익 목사님께서 “여행이 최고의 특효, 사모님 모시고 제주도 다녀오세요”라는 말씀과 함께 거금의 여행비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의 릴레이 사랑으로 맘껏 채워지니 세상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세상을 장악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전도의 열정이 되살아납니다. 전도의 맛을 아는지라 다시 기도의 자리에 머뭅니다.
위로의 시간이 된 교역자 세미나
사모 없이는 목회해도 아내 없이는 목회할 수 없다던 남편이 눈에 들어와 제 열정을 다시 깨운 것은 남편이 쓴 목회자 칼럼이었습니다.
<교회 설립 8주년을 맞으며>
벌써 교회 설립 8주년을 맞이합니다. 사실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작은 몸부림을 친 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이룬 것도 없고, 목사들 사이에서 으레 화제가 되는 예배당 건축을 한 것도 아니고, 교인 수가 늘어나는 부흥을 이룬 것도 없습니다.
담임 목사가 그런 재주가 없으니 당연합니다. 미련 곰탱이처럼 말씀만 전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님들도 참 무던합니다. 그 재미없는 말씀을 수년간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지난 8년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같이, 정말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들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남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씨앗처럼 심겨진 진리의 말씀입니다. 저는, 씨앗으로 심겨진 그 말씀이 우리 성도님들의 심령마다 살아 역사하리라 확신합니다.
남편의 글을 읽은 후 불만스럽게 읽던 잠언 31장 말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 제도를 통해 남녀가 있게 하신 것, 둘이면서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하실 인격체로 정하시고 거룩한 질서를 통해 상호 선물로 결혼의 신성성과 거룩성을 바탕으로 ‘하나님 사랑과 상호사랑, 곧 이웃사랑’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잠언에서 그려주는 여성상은 아주 강하고 진취적이며 활동적이며 신실하고 근면, 강인하고 지혜롭고 덕과 인애, 깨끗하고 단정하며 경건하고 아름답고 고운 면보다 더 크게 가치화하고 있는 것은 돕는 배필이라는 능력자로 부르셨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자극제가 된 남편의 글
나는 능력자다! 나는 할 수 있다! 세상이란 시간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지라 채우고 채운들 무엇이 위로가 되겠으며 만족이 될까요. 더욱 잃을게 없는 개척교회 사모라서 전도만이 살길인지라 쫄지 않고 전도에 마음을 쏟기로 결단합니다. 어제의 안녕이 오늘의 안녕이 될 수 없듯이 전도만이 살길이니까요.
“아버지! 어떻게 전도 할까요?”
이런 기도 응답은 총알택시보다 더 빠르게 보리건빵 400봉지를 우리 노회 김원명 목사님께서 보내주십니다. 이렇게 전도의 열정에 기름을 부어주시며 부채질을 해주시니 낮의 해도 집으로 돌아가고 어둑해진 길목에서 손이 꽁꽁 발이 꽁꽁 얼어도 바람이 불어 더 좋은 날이라 외치며 나갑니다.
전도하는 날은 그 자체만으로 뿌듯하며 고개를 높이 쳐들며 집으로 돌아오지만 매번 그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르락내리락 또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핑계 거리 찾을 땐 죽이 척척 맞습니다. 이럴 때 남편은 내게 종용을 합니다.
“여보! 요즘 세상에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헌금으로 부담 주지 말고 우리의 생활비는 우리가, 우리 김밥집 할까?”
남편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는데 기쁨보다는 타협하지 않고 올 곶은 합신의 개혁주의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로 어디가든 합신의 사모라는 것을 만천하에 자랑질이 삶의 기쁨이었는데 그 기쁨조차 앗아가는 남편이 미웠습니다.
목회 하나에만 집중해도 이 모양인데 뭐가 다를까? 사모들만 흔들리는 줄 알았는데 목사님들도 별 수 없음을 알았으니 사모의 기도는 사명감으로 열렬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주여! 저 장중현 목사는 설교 잘 하잖아요! 설교자의 복은 말씀을 전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뭐든 할게요! 제발 말려 주세요!“
말씀만이 교회의 힘이라며 개척이후 창세기부터 하루에 한 장씩 강해 설교로 말씀을 꼭꼭 씹어 먹여주니 부부싸움하고 은혜 안 받으려 입을 꼭 다물어도 입이 터져 예배당 가득 아멘하며 속없는 사모로 만들더니 이제는 목사도 시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묵히 목회에만 전념하는 남편
그런데 새벽기도회 마친 남편의 콧구멍 평수가 커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교역자회의 하자! 하나님이 인사이트를 주셨는데 말이지 전도가 안 되는 장년들 보며 힘 빼지 말고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전도하자! 우리 상가에 학원들이 많으니…”
상가 교회가 약점에서 강점으로 바뀌니 불평하던 환경은 사역지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상가에 있는지라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까 궁리를 한 것입니다.
언제나 시작은 미약한 법, 돈 만원이 없어 카드로 긁으며 시작했지만 그 날 아이들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그 아이들의 반응으로 시작이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떡볶이 전도 3년차로 접어듭니다. 백 명의 마을 아이들이 수요일을 기다리고 그들은 떡볶이를 먹으며 한 명씩 목인둥이들이 되었으며,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가며 토요일엔 그들 스스로 모여 찬양 율동을 연습하며 예배자들이 되어 예배인도와 대표기도를 합니다.
지난 성탄절엔 그들이 겪은 현장감으로 연기를 하니 모두가 명배우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뗙볶이를 타고’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부모님들까지 초대해서 공연을 마쳤습니다. 20평 작은 예배당은 작은 소극장 느낌으로 옛 추억에 젖어 지금도 이런 예배당이 있냐며 작은 만큼 은혜는 더 풍성 했더랬습니다.
아이들을 통해 들은 후문은 다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해서 감동 받고 왔어~ 그 곳에 주님의 임재를 느꼈어~ 엄마도 교회에 다녔었단다~“ 등등.
수요일마다 떡볶이를 들고 거리에 나가니 불특정 다수인을 만나 예비 교인들도 만나고 초등부를 심방하고 그들의 상담자가 됩니다. 하나, 둘 목인둥이가 되어 그들의 부모님까지 관계를 갖습니다.
초등부가 부흥되니 중고등부로 진급이 되어 동계수련회도 은혜롭게 청소년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초등부는 오대산 깊은 산속 오지에서 수련회를 2박 3일로, 주문진 겨울바다에도 풍덩 빠지기도 했습니다. 도시 속에 아파트 감옥 탈출인지라 맘껏 뛰고 놀고 맘껏 먹이고 동영상까지 동원해 학부모 카톡방으로 맘껏 자랑질을 합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둥이들을 섬기려면 그 부모들의 절대인 도움이 필요한지라 3월부터 소그룹 어머니 기도모임을 계획하며 기도중입니다.
새로운 전기 만들게 된 떡볶이 전도
SNS 중독자라 가족들의 원성을 듣고 있습니다만 그 중독은 또 다른 찬스가 됩니다. 카카오 스토리에 교회 일지를 올립니다. 날마다 사건마다 올리는데 큰 사건이 터지면 더욱 즐겁습니다. 특보감일수록 은혜도 큽니다.
카카오스토리 덕분에 목인교회는 전국구인지라 기도와 응원도 전국구입니다. 미국에서도 아들의 친구들까지도, 지난번 초등부 수련회 때 목인둥이들에게 춘천닭갈비를 대접하신 카친님도, 카카오 스토리 주제는 떡볶이 전도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미쳐야 사는 순화 사모는 예수 사랑에 미치고 그 사랑은 전도에 미치니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눈을 읽으니 그들의 마음이 보이고 누군가 해야 할 사랑이라면 제가 하고 싶습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아이들뿐 아니라 수요일 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제게는 성도입니다. 그들의 아픔이 보이니까요. 영하의 날씨에도 거리로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 수줍은 아이들은 제가 찾아가야 만날 수 있으니까요.
떡볶이를 먹던 아이가 안보여 수소문 해보면 이사를 가거나 엄마가 돌아가셔 할머님 댁으로, 아빠한테로, 또 어떤 자매는 두문불출을 합니다. 그 두문불출인 자매를 만나러 거리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 자매들은 3, 6학년 여자이니까요.
지금도 떡볶이 전도하며 낙심이 찾아올 땐 전도 현장에서 겪는지라 태풍급 강풍으로 다가옵니다. 저를 흔들어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주님은 제게 속삭이십니다.
“순화야! 너 살기위해 시작했잖아. 너 그 때 기억하니? 죽는 것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환경에서 해볼 때까지 해보는 거야! 그리고 그 때가서 포기해도 늦진 않아! 너! 지금이 최선이니? 지금까지 지내온 거 너 혼자였니? 내가 있잖아~ 임마!“
이런 저런 추억을 돌아보며 총동문회 수련회에서 새벽기도회 말씀을 들으며 목회자에게 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경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