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소망의 기회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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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소망의 기회  – 느헤미야 8장 1-6절

< 정창균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성경말씀 없는 설교는 교회의 심장이 아니라, 교회의 폭탄이 될 뿐

 

 

교회의 부흥기에는 무엇을 하여도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들에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 프로그램과 그 행사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여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그런 행사나 프로그램 때문이 아닙니다. 부흥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프로그램과 행사에 몰두하는 와중에 교회는 교회대로,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점점 말씀으로부터 멀어져갑니다.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침묵이 자연스런 현상이 됩니다. 결국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부재가 당연한 현실이 됩니다.

부흥은 하는데 사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일반화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점점 회사가 되고, 목회자는 경영자가 되고, 교인들은 고객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교회가 몰락하기 시작하는 쇠퇴기에는 이율배반적이게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게 됩니다. 교회가 현실에서 존재감을 상실하고 변두리의 무기력한 그룹으로 위축되는 현실에서는, 말씀이 무슨 효력이 있냐며 말씀으로부터 더 달아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교인들은 이 때야 말로 어느 때보다도 말씀에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불만 없이 은혜 받으며 잘만 들어오던 설교에 대하여 성경본문말씀을 설교하지 않는다며 그 설교 듣기를 고통스러워하며 불만을 토해내는 교인들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근래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부쩍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본문을 말하지 않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입니다. 두어 주 전에도 한 제자 목사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지인 장로님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오랫동안 목사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몇 달 전부터는 정말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성경본문을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목사님이 그동안 성경본문을 설교해오셨는데 갑자기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오래 전부터 해오던 설교를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장로님도 그동안 별 불만 없이, 그리고 그런 설교를 들으면서 별 탈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본문을 말하지 않는 그 설교를 도저히 듣고 앉아있을 수가 없을 만큼 힘들어진 것입니다.

주위에 이런 고민을 안고 힘들어하는 교인들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이러한 흐름은 머지않아 거센 물결을 이룰 것이고 누구도 그것을 거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에 대한 불신앙적 도전이 아니라, 소망을 주는 기회입니다.

오늘 날 한국기독교에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이야 말로 말씀으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새롭게 살아날 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를 그 내용으로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능통해지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에 철저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은 설교자의 강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설교자는 자기 자신, 성도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해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에 철저해지는 일에 목숨을 걸라고 불려내진 사람들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설교자의 다리 놓기는 본문에서 만나는 “낯선 신세계”와 청중이 살아가는 “지금 이곳”의 세계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청중으로 하여금 말씀을 통하여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런 점에서 설교는 신비이기도 하고 기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가 조롱을 당하고 불신을 당하는 현실에서도 나는 여전히 설교를 신뢰하고 설교의 회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느 학자의 말대로 설교야말로 “교회의 심장”입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언제나 성경말씀을 말하는 설교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는 교회의 심장이 아니라, 교회의 폭탄이 될 뿐입니다.

혹독한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재건을 마치고 수문 앞 그 광장에 모였던 모습을 나는 자주 떠올립니다. 남녀 구별 없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백성이 그 광장에 모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특설 강단이 세워졌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펴서 들고 그 강단에 서니, 모든 백성들이 일어섭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니,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한국교회가 이제 들어가려고 하는 곳이 바로 이 광장입니다.

나는 한국교회에서도 이 광장의 모습을 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벨론 강변에서 수금을 나무에 걸어버리고 통곡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 때처럼 혹독한 우리의 현실을 통하여 그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금 망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절명의 기회를 맞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