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던 토요일의 수채화
< 고숙경 집사, 열린교회 >
“만년의 시간에 그 분의 삶은 엄청난 밀도로 내게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봄의 전령사인 듯 화끈한 청혼 같은 봄비가 내렸다. 늘어지고 싶은, 늘어져야할 것 같은 토요일이지만 부지런을 챙겨서 하루를 엮어보았다.
인생의 남은 시간을 보내기위해 거처를 옮기신 분을 꼭 찾아뵙고 싶어 포천에 있는 호스피스 처소를 찾아 갔다. 내게 오라는 허락이 있어서 찾아 뵌 2층의 6인실 방은 병원의 복잡함을 벗어나 주님께서 이 분에게 베푸신 마무리의 시간이라는 은혜라 여겨졌다.
사람은 누구나 어김없이 정한 때에 부르신 분의 손길을 기다리며 산다. 내게 형님 같은 이 분은 나를 보고 싶었다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렇게 두 손을 잡고서 나의 기도를 형님께 전했다. 구원의 확신, 그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달라는 나의 기도에 주님은 형님의 마음을 지어주셔서 감사하고 기쁜 기도를 드렸다.
나는 이러한 표현이나 분류를 대단히 사악한 지적 장난이라 치부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편리를 위해서 사용한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당신의 삶을 그저 어린 아이 같았다고 하셨다. 견딜힘도 없고 단지 다행히 큰 풍파 없이 살다 적당한 나이에 병이 들어가니 원도 한도 없다며 곧 갈 거 같다면서 인생의 선배로 여러 가지 말씀을 주셨고 나는 이에 너무도 감사하다 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여 할 말이 있다며, 일 년 사 개월을 먹지 못하고 이렇게 있다는 게 신기하다면서 먹을 수 있음도 감사고 모든 것에 걱정하지 말고 살라시는데 어쩌면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을 부르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흡사했다.
혹시나 내가 사는 일이나 자식 일에 골머리를 싸매고 살까 싶으신지 작은 이해에 연연해하지 말고 자식에게도 집착하지 말라시며 나머지 삶을 부부간에 사이좋게 잘 살라 하신다. 사실 이것도 나에게 가장 큰 숙제이지만 말 잘 듣는 나의 버릇을 발동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피도 살도 나누지 않은 인연. 한 때 건강하고 거침없고 어쩌면 오만함을 사양하기 어려운 시절에는 그냥 부모 잘 만나 철없이 자기 하고픈 대로 인생 사신다고 본인이 말씀하셨고 나도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고 나와 별 상관없는 분으로 여기고 지냈다. 건강에도 자신하여 한 참 아래인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생경한 인생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랬던 그 분이었는데 이제 만년의 시간에 그 분의 삶은 엄청난 밀도로 내게 들어왔다. 어찌하여 나를 좋아하신다는 건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진심을 다해 대할 뿐이다. 머지않아 형님은 주님의 품에 안기실 때가 올 것이다. 그 소식에 나는 자그마한 안도의 숨을 손에 쥘 거 같다.
들풀과 같은 나의 삶을 지으시고 빚으시고 존귀케 하신 우리 주님의 사랑. 이제 나는 그 사랑만을 전심으로 따라 가면 그 뿐이다. 삶은 지치라 주어지지 아니하고 모든 것은 사랑하는 분의 은혜일뿐이다.
주께서 왜 그 분을 만나게 하셨는지 빗속을 지나오며 나는 저 하늘 너머의 한 줄기 빛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 땅에 보화를 쌓는 삶이란 무엇인가? 그 반대의 삶이란 또 무엇인가? 주님은 그것을 내게 묻고 계신다. 문득 바울 사도가 남긴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집에 돌아오니 마침 딸아이가 아름다운 몇 송이 꽃을 사들고 왔다며 더불어 몇몇 꽃 사진을 보여주었다. 딸아이의 마음처럼 나도 그 봄꽃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핑계로도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잠시 딸아이가 정색을 하며 현실의 난제들을 운운하기에 “공부 너무 힘들게 하지 마라. 적당히 해. 우리는 감사와 기도로 사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다 따라오는 선물일 따름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네. 알겠어요. 엄마” 딸아이의 작은 목소리에 봄기운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