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한국교회사와 한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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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와 한국의 현실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평생 벌콥의 조직신학만을 가르친 것은 고 신복윤 교수의 업적

 

 

 

신복윤 교수님이 향년 91세(1926년 탄생)로 지난 1월 14일에 소천하셨다.

익히 알고 있듯이 해방 후 한국 장로교 역사는 신사참배 문제로 옥중에서 풀러 나온 분들과 그렇지 않는 분들 사이에 공적으로 혹은 깊게 회개하지 않는 문제로 얼룩진 역사를 남겼다.

그러나 정작 한국교회에서 발생한 얼룩진 역사는 미국에 있는 프린스톤 장로교 신학교가 1930년대 자유주의 신학 문제로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한국 유학생들이 선택한 신학적 입장들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6.25 사변과 함께 강제 월북되어 인민군 협력 거부로 소천한 남궁혁 교수와, 북한에 남아 있다가 순교한 이성휘 교수, 그리고 평양신학교 한국인 교수 중 한 사람이었던 박형룡 교수가 프린스톤 장로교 신학교 출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양신학교와 달리 선교사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설립되었다고 자랑하는 조선신학교의 역사와 함께 해방 후 계속 그 조선신학교 교수들로 활동하였던 송창근 교수와 김재준 교수 등도 같은 프린스톤 장로교 신학교 출신이다.

박윤선 교수께서 그 프린스톤 장로교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 입장들을 피해 메이쳔 교수 밑에서 수학하였던 상징적인 유학생활과 달리 이들 송창근, 김재준, 한경직 목사 등은 프린스톤 장로교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들을 여과 없이 수학하여 받아들인 대표적인 유학생들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 신학교 재건 운동의 열매로 총회의 장로교 신학교 직영 결의에 따라 1948년 6월에 총회신학교가 개교하였을 때, 고 신복윤 교수께서도 그 직영 장로교 신학교의 임시교장이었던 박형룡 교수 밑에 옮겨 수학하였다.

이것은 고 신복윤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확인한 내용으로 당시 박형룡 교수께서 교수하실 때 이미 벌콥의 조식신학을 번역한 프린트물을 가지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기억하셨다. 그런 연장선에서 신복윤 교수님도 평생 벌콥의 조직신학만을 고집하여 가르치셨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는 그의 공헌이다.

왜냐하면 그 전 조선신학교 때 1947년 4월 18일 조선신학교 51명의 신학생 진정서 사건 때 참여한 인물들 중에 정규오 목사, 김준곤 박사, 조동진 목사, 차남진 박사 등 많은 유력한 인사들이 포함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박형룡 박사의 신학적 근본정신을 살려내 유지하신 분은 바로 신복윤 교수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 교회 안에 자유주의 신학이 깊숙이 들어 왔었다는 증거는 조선신학교 신학생들의 진정서 사건을 통해서 공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 진정서를 통해 당시 조선신학교의 면학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당시 학생들 중에는 노회 추천 없이 입학한 자들도 많아서 육체부활이나 재림, 심판,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 처녀 탄생,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주일성수도 하지 않는 재학생들도 있었고 신학생 중에는 흡연자,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도적하여 팔아먹는 자, 다른 교파 신자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도 있었다는 문제점들도 확인이 되고 있다.

이 ‘정통을 사랑하는 학생 일동’의 그 진정서에는 ‘개혁교회’로서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과 “우리가 유아로부터 믿어오던 신앙과 성경관의 근본적으로 뒤집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적 자세가 분명히 표현이 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조선신학교의 처음 설립 정신으로서 신앙은 보수적이지만 신학은 자유라는 교육이념이 신학교육의 현장에서 구현되면서 한국 장로교회 안에 ‘근대주의 신학사상, 성경의 고등비평, 자유주의 신학과 합리주의 신학’이 소개되기 시작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를 그 진정서 내용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김재준 교수의 가르침 안에는 최초로 독일의 근대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근본 문제인 마르시온 신학의 핵심 내용에 따라 구약을 기독교 성경이 아니라 유대교의 성경으로 전제하고 모세 오경에 대해서 J.E.D.P 문서들을 소개하거나 이사야에 대해서 다른 문서들을 소개하면서 문서들 사이에 법적, 사상적 혹은 시대적 차이들에 의해서 모순들과 오류들이 생겼을 것으로 가정해 보는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연구와 과학적 철학적 비판을 해야 한다는 연구방법들과 그 결과들이 소개되었다는 점이 그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성경 각 권들의 시대성, 역사성, 저자 등이 부정 되고 성경 각 권이 글로서 완성되기 전까지 시대적 변천과 발전 및 외부적 영향들을 연구하는 소위 세계 곳곳에서 유행하는 학문적 방법들과 그 결과물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소개된 결과가 바로 “성경은 교리의 교과서가 아니다. 신구약 전체를 뒤지면서 삼위일체니 교리니를 찾아 내고자함은 어리석음이니 하나님은 성경에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태도로 이어졌고 그 결과 “예정론에 대하여 의미가 없다. 결국 칼빈의 예정론은 숙명론에 돌아간다”고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마가복음 선행설, 복음서들의 원 자료(로기아)와 타 자료 사용설, 쉴라이어막허 인격 영감설 등과 같은 송창근 교수의 가르침은 당시 한국 선교사들이 위험한 것으로 배제하기를 원했던 미국이나 기타 선교사 파송 교회들 안에 이미 급격히 퍼지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적 방법론들과 함께 세계 학문들과 교류한다는 명목 아래 한국장로교회 안에 심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탐구된 역사적 예수는 다른 종교들의 기원자들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져 버린 결과 기독교가 없어져 버린 것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사소한 일들이 아닌 그런 하나님과 성경을 모독하는 성직자들의 불경건한 행위들로 인하여 민족이 해방되었어도 그 해방 이전의 치욕보다 더 뼈아픈 전쟁과 그 분단의 슬픔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늘날까지 형벌로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따르면, 그런 형벌에는 냉전 시대의 정치 역학적 국제 환경들의 영향들보다 이런 참된 교회의 진리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무의식적인 행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반영이 더 무서운 원인으로 있을 수 있음을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를 탓하기 전에 진리를 찾고 진실을 지켜내며 불행을 이기는 일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들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그런 마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더 믿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