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유신 진화론’인가?
작금 유신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들 유신 진화론자들 역시 진리인 성경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론을 주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잘 알다시피 신학의 특성 중 하나인 유기적 성격은 그 상호 긴밀한 성격으로 인해 유별나게 돌출적인 소결론이 성립할 수 없는 동시에 어떠한 오류들도 그 안에서 다소간 설명이 가능하다는 양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대부분 고립되어 있지 않고 방대한 조직을 이루며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유기적 특성에 따른 진리로서의 성경은 ‘창조’ 뿐만 아니라 소위 ‘진화론’에서부터 ‘창조적 진화론’(creative evolutionism) 혹은 ‘유신 진화론’(theistic evolution)까지도 얼마든지 일부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즉 성경의 전체적 조망 가운데서는 ‘창조’만이 올바른 설명의 경로이지만 소위 ‘창조적 진화론’이나 ‘유신 진화론’이라는 오류로 이탈하는 경로의 근거도 역시 진리인 성경 안에서 얼마든지 엮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에 대비되는 모든 진화 이론, 그것이 철저한 진화론이든지 유신론적 진화론이든지 간에 창조 외에 부가되는 모든 진화 개념의 수식적 단어들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조세계(the world) 혹은 물질세계(the material world)의 자율(自律)이라 할 것이다.
곧 유신론적 진화론이라 할지라도 진화론과 근본적으로 같은 바탕을 이루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 그리고 섭리 없이도 그 스스로를 유지시키거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점에서 동일한 배양기(medium)에 놓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진화론에 있어서 보편산(Universal Acid)은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에 있으며, 이에 따라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 안에 있는 자연계에서 완벽하게 제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신론적 진화론 역시 인간 이성이 생각하는 자연계인 피조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물러나게 하는 이론인데, 진화론처럼 철저히 내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신론(deism)이라는 뒷방으로 하나님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신 진화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원창조 이후의 보존과 통치를 전부 피조세계에 부여한 능력에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조 이후의 모든 세상은 진화론으로도 얼마든지 설명이 될 수 있을 만큼 자체적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이 됐든지 유신 진화론이 됐든 간에 세상이 자체적인 능력에 의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생각(idea)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한 생각은 하나의 강산(强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에 의하면 세상 안에는 애초부터 진리인 것은 없으며, 인간 스스로의 합리성과 지혜 가운데서 얼마든지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고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생각 가운데서는 과거의 것은 이미 무용한 것들이며, 당장에 그리고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 항상 유용한 것이다. 과거에는 과거에 맡는 생각들이 필요했고, 지금은 지금에 맡는 생각이, 그리고 미래에는 또 다른 유용한 생각들이 필요할 뿐 영원한 진리와 같은 것은 결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모든 논의들은 당장에 살아가는데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 보일 수 있다. 세상이 진화했거나 유신 진화한 것이건 간에 당장에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 의미도 문제도 없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진화론이라는 것은 명백히 보편산(Universal Acid)이다.
물질이건 생각이건 간에 모든 것들을 다 무위(無位)로 녹여버리는 사고들이 바로 진화론이다. 당장에는 인류가 진보해 나가는 것처럼 설명이 되지만 언젠가는 모든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전혀 정상적인 자연의 진화과정일 뿐이며, 더구나 그런 인간 사회에 진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도를 다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작금 한국의 신앙인들은 생각하고 사고하기보다 느끼기에 익숙하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저 막연하고 피상적인 이데아(idea)로서의 천국을 추구할 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특별히 창조와 다른 모든 진화의 패턴과 맥락을 분별하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우리는 창조 외에 그 어떤 형태의 진화론적 가설에 근거한 창조적 진화론 또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거부하며,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을 강단에서 퇴출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