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 유감
< 김원광 목사, 중계충성교회 >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
한 대학가 거리에 차를 세우고 제법 오랜 시간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어간 가족들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는데, 차 안에 앉아 나는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학생들이 피우던 담배나 음료수를 길거리에 그냥 버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내려 거리에 버려진 음료수 병을 보니 절반쯤 남아 있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주변이 온통 이런 쓰레기들로 지저분했습니다. ‘이게 대학생들이 하는 행동이 맞나?’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고등학교 행사에 참석한 교역자로부터 각종 쓰레기가 교실과 복도에 그대로 버려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분도 ‘여기가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학교 이곳저곳에 왜 쓰레기가 그냥 버려져 있느냐?’고 선생님께 물어 보았더니, ‘용역이 아직 안 왔나?’ 하더랍니다. 결국 학교가 그렇게 더러웠던 이유는, 학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게 하려는 부모님들과 학교 당국의 배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교역자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때 본 대학생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무데나 버려도 용역에서 늘 치워주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일은 남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심지어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교육의 내용 중에는 분명히 한 사회의 일원으로 사람의 마땅한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 중에 ‘남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 혹은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지나치게 국영수 점수 따기에만 집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우열이 그것으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작 사회생활에 필요한 태도나 예절들에 대한 교육은 늘 뒷전이 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도리어 망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데나 버려야 쓰레기를 줍는 용역 회사에 일자리가 생긴다고 아이들이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입니다.
우선 그런 일자리들은 결코 양질의 일자리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자리를 위해 부모의 재정지출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더러운 학교를 사랑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학창시절에 방과 후면 학우들과 학교 마루를 왁스로 광을 내고, 창문들을 입김을 불어가면 닦던 기억들이 납니다. 이런 행동들은 그 학교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마음대로 쓰레기를 버리고 용역에게 치우게 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자기 학교에 대한 애정이 예전 사람들만큼 있을까요? 또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스스로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될는지요? 이것은 단지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조차도 자신이 직접 교회당을 청소하거나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하기 보다는 용역을 사용하자는 요구들이 커지는 시대입니다. 과연 그런 행위들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지를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손때 묻혀가며 수고하는 것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