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들의 전쟁, 알렉산드리아 계와 비쟌틴 계의 대립_김진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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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 눅2:14 (사진출처: www.codexsinaiticus.com)

사본들의 전쟁, 알렉산드리아 계와 비쟌틴 계의 대립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어떤 본문을 선택함에 있어 개혁신학 보수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현재 신약성경의 원문을 확정하는 데 사용되는 사료들은 약 25,000개 정도이다. 이들을 적절하게 비교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본의 특징을 따라 분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본들을 계통에 따라 선구자적으로 분류한 학자는 벵겔(J. Albrecht Bengel)이었다. 지금까지 사본들은 여러 가지 계통으로 분류되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분류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알렉산드리아 계와 비쟌틴 계이다.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현대 사본학을 검토하기 위해서도 이 두 계통의 성격과 특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알렉산드리아 계통으로 분류되는 사본들의 거점은 초대교회 기독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리겐과 클레멘트와 같은 교부들을 배출하고 교리신학교가 세워진 전통 있는 신학도시였다.

또한 데키우스와 발레리안으로부터 자행된 핍박의 역사도 간직한 알렉산드리아는 콘스탄틴의 종교화의(宗敎和議, A.D. 380)와 기독교국교화(A.D. 392)가 선포된 후 8세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기독교 도시였다.

이 도시의 신학적 전통을 내포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사본들은 본문의 길이가 짧고 난해하며, 또한 사본의 수가 소수라는 점으로 그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

이집트 계통으로도 불리는 이 사본들은 현대 사본학자들에게 중립적인 사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신약성경의 편집에서 가장 우선되고 있다. 이 계통 속에 P46을 비롯한 몇 개의 파피루스들과 시나이사본(Codex Sinaiticus), 바티칸사본(Codex Vaticanus), 알렉산드리아사본(Codex Alexandrinus)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맞서는 비쟌틴 계의 사본들은 주후 3세기 무렵 수리아 안디옥과 그곳의 신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루키안(Lukian von Antiochia)의 성경편집에서 그 계통적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때문에 현대적 비평사본학의 기본적 틀을 마련했던 웨스트스콧(B. F. Westscott)과 호르트(F. J. A. Hort)는 이를 시리아 계로 분류했다.

비쟌틴 계통의 사본들은 파피루스와 시나이사본의 발견 이전까지 ‘다수사본(Mehrheitstext)’으로도 불리면서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을 통해서 16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지배했다. 이 계통에는 알렉산드리아사본 중 복음서와 에프렘사본을 포함해서 수많은 필사본들이 여기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비쟌틴 계통의 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 계통에 비해 본문이 길고 평이하며,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특징으로 가진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자 베자, 스테파누스, 스크리브너 그리고 공인본문을 토대로 번역된 킹제임스번역의 신약성경본문은 모두 비쟌틴 계열의 전통에 속한다. 

두 계통의 본문이 보여주는 차이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전반에서 확인된다. 그 중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허다한 천군천사의 송영’을 기록한 눅 2:14이다.

그리스어 원문을 토대로 보자면 눅 2:14에서 두 계통의 사본이 보여주는 차이는 문장의 끝에 위치한 알파벳 단 한 글자이다. 이 구절은 이 알파벳 ‘시그마(Σ)’ 한 글자 때문에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현재 우리가 가진 개역성경은 시그마를 추가하여 어려워진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본문을 수용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는 자들 중에 평화로라.” 반면 시그마를 삭제한 비쟌틴 계통의 본문을 수용하면 이 찬송은 세 절로 끊어지는 운율을 확보하여, 시적인 미가 살아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강이요. 사람들에게는 기쁨이라.”

위의 사진은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최선두에 있는 시나이사본이 비쟌틴 계통의 사본들과 아슬아슬하게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민의 흔적이다. 시나이사본의 수정자는 눅 2:14의 마지막 알파벳 시그마(Σ)를 삭제했다.

단어의 마지막에 알파벳 시그마를 추가하면 우리말 번역에서는 의역으로 잘 느껴지지 않지만, 그리스어 원문에서 천사의 송영은 상당히 난해하게 된다. 때문에 시나이사본의 수정자는 시그마를 지워버렸다. 이와 비슷한 수정의 흔적은 시나이사본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본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와 같은 사본 계통의 차이는 다시금 사본학의 중요성과 아울러 개혁주의적 사본학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럼, 어떤 본문을 취하여야 할까? 두 개의 본문이 선택적으로 주어져서 어떤 본문을 취하던지 크게 오류가 없다면,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기보다는 어떤 것이 더 유익한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어떤 본문이 더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위와 진리를 더 드러내며, 또 어떤 본문을 선택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며, 개혁신학을 보수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탄생을 노래하는 천사 찬송의 오래된 버전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강이요, 사람들에게는 기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