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현장 리포트 <4>| 케냐 마사이 부족 여성의 할례 이야기_최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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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마사이 부족 여성의 할례 이야기

< 최현재 목사,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남가주노회 >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인격적인 행위들 이제는 사라져야

 

 

한 유대인 가정으로부터 아들의 할례의식에 참석해달라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배우며 듣던 친근한 말이지만 실제 행해지는 의식을 접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에 도착하였다.

정원 큰 파티용 텐트에 유대인식 케더링으로 잔치음식을 배설하고 화려한 차림의 연주가들이 유대인 생음악을 연주하는 중에 어도브(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서브되는 간식)를 먹으며 시작을 기다린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아버지는 난지 8일된 아기를 가슴에 품고 등장하여 레바이(랍비)앞에 선다. 그 랍비와 아기를 중심으로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이 둘러서면 랍비는 희브리 말로 성경을 읽는다.

창세기 17장에 처음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에 얽힌 내용을 히브리어로 노래하듯 읽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진지하게 의식을 행하는 그들의 모든 행위가 구약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행하는 모습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되새기면서 아기의 입에 포도주를 천에 적셔 머금게 하고 랍비가 아기를 가슴에 안고 양피를 베어내면서 춤과 음악을 곁들여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할례의식과 그들의 축제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이미 밝혀졌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자지를 통하여 마음과 몸의 할례가 언급되면서 신약시대의 바울 사도는 로마서 2장에서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라고 가르치고, 갈라디아 교회의 중요한 이슈였던 할례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단호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의 할례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는 할례의식이 이집트와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왜곡되어 행해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약 3시간 거리인 마사이 부족 마을 사람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며칠 동안 먹을 음식과 한 드럼의 마실 물을 싣고 그곳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로 자동차로 달리기에는 다소 험하였다. 일반 도로에서 비포장 샛길로 들어서면서 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던 중 먼지가 자욱한 길 중앙에 붉은 천을 온몸에 휘감고 분주히 우왕좌왕하던 한 무리의 마사이 부족 마을 사람들이 우리 일행의 차를 세웠다.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차창을 열고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당신들 중에 의사가 있습니까?’라고 말했고, 그 이유를 물으니 여기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치료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자신이 의사라고 소개하며 그 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어 가서 보니 13세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열이 펄펄나며 동공이 풀려있고 입에서 거품을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은 모습을 보고 필자의 판단에 이 환자는 침으로 치료해야 할 환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우리 일행의 차를 내주며 급히 병원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일은 마사이 부족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은 소의 숫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즉 소가 많으면 부자이고 적거나 없으면 가난한 사람이다. 소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할 일이 많아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마사이 부족에게서 여성은 노동력의 상징이다. 여성이 집을 짓고 소가 먹을 꼴을 만들어 그들을 먹이며 돌보아야한다.

부인들은 소똥에 진흙 및 지푸라기들을 섞어 집을 짓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모기가 소똥 냄새를 싫어하여 그것으로 집을 지으면 그것들을 쫓을 수 있단다. 이렇다보니 소가 많은 부자는 일군이 많이 필요하고 그 필요한 일군들을 많은 부인을 거느려서 노동력을 확보해야한다.

가장의 집을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부인들의 집이 들어선다. 가장은 매일 밤 자신이 원하는 부인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일이 이렇다보니 부인들 사이에 질투와 시기로 싸우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할례를 하면 여성이 가진 정상적인 감정 중에 하나인 질투하는 성품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성욕도 없어지며 그로인한 성감도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부인을 많이 거느린다고 해도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인이 한 사람 더 늘게 되면 다른 부인들이 더 반가워하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 아이가 13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할례를 시킨다는 것이다. 마사이 부족에서 태어난 여성은 이 악한 관습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누구든지 그 나이가 되면 할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게 위생관염이 없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깨끗지 못한 식칼과 같은 것을 갈아서 여성의 은밀한 한 부분을 도려낸단다. 이 과정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혹 면역이 좋은 건강한 처녀는 잘 아물어 무탈하지만 그렇지 못한 처녀는 이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게 된다는 것이다.

문명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고 하겠지만 그곳에서는 상식과도 같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케냐 정부에서도 이러한 악한 관습을 고쳐보려 시도해 보지만 마사이 부족들은 도시의 행정이나 법이 닿지 않는 깊은 오지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을 통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그 마사이 부족의 어린 여자아이가 당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여성할례, 그외 여러 나라 후미진 곳에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여성을 향한 비 인격적인 행위들, 그것들은 분명 사라져야할 21세기의 악습임에 분명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게 하는 무서운 여성할례는 분명히 남성들의 이기적인 악한 성품에서 시작된 악습이다. 창세기 2장에 아담은 자신의 아내를 보며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하지 아니하였던가.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이라는 최고의 표현이 타락하여 여성할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케냐 나이로비의 오지 마사이 부족들가운데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복음이 들어가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