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화를 향해 설교하라_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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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향해 설교하라

고상섭 목사_ 남서울노회 그사랑교회

 

미국 유명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2005년 캐니언대학 졸업식에서 ‘이것이 물이 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윌리스는 서두에서 바다에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대화를 소개 한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나이 든 물고기를 만났을 때, 나이 든 물고기가 “얘들아, 물은 괜찮아?”(Morning, boys. How’s the water?)라고 묻자, 어린 두 마리 물고기는 혼란에 빠져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렇게 묻는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뭐지?”(What the hell is water?) 윌리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물고기 이야기의 핵심은 가장 명백하고 중요한 현실이 실제로는 가장 보기 힘들고 이야기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예화는 청중에게 가벼운 웃음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심오한 진리를 전달한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살면서 물이 무엇인지 모르 듯이, 문화라는 환경 속에서 숨 쉬고 살지만 그것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 모른 채 살고 있다. 물이란 거기에 늘 있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 피할 수 없는 문화 내러티브를 상징한다. ‘문화 내러티브’란 문화 속에서 진리 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성경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이것을 ‘내러티브’라고 말하는 이유는 누군가 명제로 가르친 적이 없지만 살면서 시대의 문화가 주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 럽게 습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물에서 살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 라, 그것을 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웨스 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칼 트루먼은 『확신의 위기』에서 오늘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문화 내러티브를 ‘표현적 개인주의’라고 정의했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모든 사람이 일련의 내적 감정, 욕구, 정서에 의해 구성된 다는 개념이다. 진정한 나는 내 몸 안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이며, 따라서 이런 내면의 감정에 따라 겉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지극히 참으로 나 자신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체의 특성과 상관없이 내가 여성으로 느끼면 여성이 되고, 남성으로 느끼면 남성이 되는 트랜스젠더 현상도 표현적 개인주의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2016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 <모아나>라는 영화를 보면 폴리네시아 어느 섬의 추장 딸모아나에게 할머니는 친근한 노래 형식을 빌 려, 모아나의 ‘참 자아’는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이 잠재된 갈망을 표출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친 다. 전형적인 표현적 개인주의 시대의 메시지 다. 그러면서 손녀에게 마음의 목소리가 중요 하고 “그 내면의 소리가 바로 너란다”라고 말해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오늘날 문화는 말하고 있다. 이런 문화에 젖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교회는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레슬리 뉴비긴은 “오늘날 서구 교회들이 해야 할 선교적 사명은 계몽주의 이성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비긴은 영국교회가 부흥할 당시 인도 선교사로 파송되어 갔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영국교회는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전처럼 교회는 늘 복음을 전했지만, 왜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교회는 쇠퇴기에 접어들었을까?

복음이 변하지 않고 설교도 변하지 않았지만 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교회의 가르침과 설교의 권위,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시대여서 설교를 듣고 순종했지만 계몽주의 이후에 인간의 이성이 더 크게 자리잡는 문화 속에서 성경보다 이성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했다. 이런 시대에는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성경보다 높아진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일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즉 복음으로 가는 장애물을 치워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효과적으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기에 뉴비긴은 계몽주의 이성의 허망함을 먼저 드러내주는 작업이 필요하 다고 말했다.
뉴욕 리디머 교회 목사였던 팀 켈러도 『탈기 독교 시대 전도』에서 이전 시대 교리교육은 단순히 교리를 가르친 것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이 선행되었다고 말한다. “성경교리를 사용하여 세상 문화가 제시하는 신념을 무너뜨리되 그 문화의 내러티브는 답변하지 못하는 인간 내면의 물음에 대답해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교리문답은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하여 로마 카톨릭의 오류를 드러내는 데도 목적이 있었다.

올바른 세계관을 건설하는 작업만이 아니라 당시 지배적인 세계관을 해체하는 작업도 함께 수행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만 봐도 단순히 기독교 교리를 정리해 둔 것이 아니라 로 마 카톨릭의 오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깨트리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인다. 이것은 단순히 카톨릭의 교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지배적인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 내는 작업을 선행하는 것이다.

칼 트루먼은 표현적 개인주의로 자신의 감정이 모든 판단이 되는 시대에 개혁주의 신조와 신앙고백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급진적 주관주의로 흐르는 문화 속에서 신조와 신앙 고백서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역사와 전통을 거친 성경의 진리가 우리를 시대의 문화 내러티브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가 모든 해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닦아 놓은 믿음 안에서 성경적 진리와 역사성을 가진 신앙의 전통이 진정한 해답임을 알게 될 때 시대 정신으로부터 점점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대에 꼭 필요한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좀 더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신조와 교리의 내용에 앞서 우리를 둘러싼 잘못된 문화적 우상을 무너뜨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 신념의 모순을 잘 드러내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오, 그래서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느낀 거였구나”를 깨닫게 된다. 팀켈러는 이렇게 표현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설교자는 문화 이야기가 복음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도전하고, 궁극적으로 문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시 들려줌으로써 선을 향한 그들의 가장 깊은 열망이 오직 그리 스도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표현적 개인주의 시대에도 언제나 해답은 변하지 않는 복음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 해답까지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문화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가짜 복음을 드러내 줄 의무가 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참된 토대가 됨을 더욱 밝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표현적 개인주 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신조와 신앙고백 서를 가르쳐야 하는가? 이것은 내용의 문제라 기보다 방법의 문제인 것 같다.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항적 교리문 답’(Counter-Catechesis)을 준비할 때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시대를 넘어서 더 신선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