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 극복, 그리고 북한 선교와 통일
『인사이드 평양』의 저자 박기석 목사
대 담: 김학인 목사 본보 편집국장 박기석 목사
합신 5회, APWM(호주장로교단) 선교사
▲편집국장 :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기석 목사 : 저는 합신 5회이며 대구동 흥교회, 서울 염광교회, 부산 호산나교회를 거쳐서 32년 전에 호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호주에서는 멜번한인장로교회 담임을 거쳐 APWM(호주장로교단 선교사)로 현재에 이르 렸습니다. 약 20년간 평양에 머물면서 김일성 종합대학 박사원에서 남한 출신으로는 1호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그 대학에 남아서 연구 활동을 했습니다
▲편집국장 : 이번에 『인사이드 평양』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기석 목사 : 그 동안 한국에서 출판된 저의 책이 3권 있습니다. 『인사이드 평양』은 네번째 책인데, 그동안 덮어뒀던 비망록 같은 것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23년 1월에 북한 정부에서 제정 발표한 ‘평양문화어 보호법’과 관련하여 평양에서의 저의 학술 활동에 신중해야 한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평양 문화어보호법 전문’을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법이 남북한 언어 연구를 하는 저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부를 끄집어낸 겁니다. 이 책은 북한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예술, 정치, 그리고 제가 공부한 김일성종 합대학과 최고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편집국장 : 목사님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기석 목사 : 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호주 장로교단으로 이적을 한 후 멜번 외곽지에 있는 호주인 교회를 잠시 맡아서 사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한국교회처럼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새벽 모임에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 그 모임을 인도하고 개인 기도를 하는 중 느닷없이 에스더 4:14 말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 다. 그 말씀을 저에게 적용했을 때 하나님께서 호주의 영주권 시민권을 저에게 주신 것이 이때를 위해 주셨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신학교 다닐 때 다짐 하며 조용히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루는 박윤선 목사님이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놨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여호수아 3장을 본문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당신 께서 평양에서 신학교 다닐 때 그 말씀을 읽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성경책을 옆에 끼고 대동강에 나가서 대동강에 발을 들여놨으나 강물이 갈라지지 않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우들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장차 누군가는 북한에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 제가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때의 일이 뒤늦게 생각나 호주장로교 총회에 이야기하고 선교위원회에서 저를 그 땅에 보냈 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선교사로는 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택하게 되었는데 그게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은혜였습니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강조하는 북한은 우리 말에 대해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언어정책에도 그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편집국장 : 목사님이 북한과 남한의 언어를 연구해 오셨는데 이와 관련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기석 목사 : 민족을 특징짓는 3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이 언어이지 않습 니까? 그런데 8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남과 북의 언어에 이질화의 골이 깊어졌 습니다. 민족성과 고유성을 강조하는 언어정 책을 일관되게 시행해 온 북한은 우리말의 고유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외국어를 다듬어 쓰는 것을 보면 남한과 확연하게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남한은 외국 어와 외래어가 차이가 없을 정도로 외국어를 다듬지 않고 사용하지만, 북한은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남한에서 외국어 단어 그대로 사용하는 ‘퀴즈’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고유어로 다듬어 ‘알아맞추기’라고 합니다. ‘커튼’은 ‘창문 가리개’로, ‘햄버거’는 ‘고기겹빵, ’‘매니큐어’는 ‘손톱 물감’으로 사용합 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어 이질화의 골은 점점 깊어져서 북한에서 온 탈북 주민들은 영어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남한에서 적응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자면 제가 평양에서 이발하러 갔습니다. 이발사는 30대의 젊은 여성이었습니다(남한에 서는 요즘 헤어디자이너라고 부른 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발을 하면서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동 무는 결혼했습니까?” “예 했습니 다.” “세대주는 뭘 합니까?” “군관 입니다”(군관이라는 말은 남한식 으로 말하면 장교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계급이 뭐냐고 물어보았습 니다. 그랬더니 여성은 아주 의아해 하면서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선생님 ‘계급’이라는 말이 뭡니까?” 북한에서는 군인들의 계급을 ‘군 사칭호’라고 부르기에 계급이라고 하면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북한에서는 장성이라는 말도 ‘장령’이라고 하고 ‘장군’이라는 말은 오직 최고 지도자에게만 사용합니다. 이야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아이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예, 처녀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해서 제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결혼을 좀 일찍한 모양입니다. 그 처녀가 올해 몇 살입니까?”
“세 살 났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를 ‘처녀’라고 부르는 것이 좀 귀에 설었습니다. 평양에 처음 가서 택시를 타고 서점엘 가자고 하니까, 택시 기사가 “서점이 뭐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북한에선 ‘책방’이라고 하지 ‘서점’이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 남한과 달리 시옷 다음에 이응이 아니라 지읒이 오고, 이응은 맨뒤에 위치해서 처음에는 혼란스럽습니다. 또한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고 사이시옷을 쓰지 않아서 문맥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의미 파악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편집국장 : 남북통일과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박기석 목사 : 먼저 우리 크리스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끝까지 품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현재 한국에 먼저 온 3만 명의 탈북민들조차 제대로 품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교와 통일은 우리가 준비될 때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또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될것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역사를 주목 하는 것이 사실상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 니다(계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