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속정치로 인한 상처, 복음으로 치유하자_최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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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정치로 인한 상처, 복음으로 치유하자

 

최덕수 목사(경기북노회 현산교회)

 

그동안 우리나라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몸살을 앓았다. 계엄 사태와 조기 대선 과정에서 개인과 정당 간 비난하고 맞고소하는 일로 정치판은 치고받는 싸움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정상적인 정치 상황으로 교회도 어려움을 겪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에 대한 이견으로 갈등이 야기되었고, 진보와 보수로 교회마저 편이 나뉘어졌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 존중하며 하나 되는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

첫째, 어느 한쪽만을 편들고 지지하는 편향성을 버리고, 잘못은 지적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는 균형 잡힌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사람에게는 오류와 허물이 많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 지도자들을 무조건 편들고 찬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가? 적지 않은 이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실수와 잘못이 있음에도 노골적으로 편들기만 한다. 이는 믿음보다도 강한 정치적 신념이 작용한 탓이다.

 

칼 트루먼이 쓴 『진보보수 기독교인(REPUBLOCRAT)』이란 책이 있다. 칼 트루먼은 진보적 보수주의자인 반면,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피터 A. 릴백(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총장)은 보수주의자 중의 보수주의자이다. 릴백은 추천사에서 트루먼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도성(하나님 나라)의 은혜 때문에, 보수주의자 중의 보수인 내가 진보적 보수주의자인 트루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귀중한 형제라 일컬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정치적인 입장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한 형제임을 기억하고 문제를 지적하면서 추천사를 쓴 것이다. 칭찬 일색인 일반적인 추천사와는 다르게 쓴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런 자세를 가졌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라는 말로 게바를 높였다(갈 2:9).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게바(베드로) 편을 들지 않았다. 바울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식사하던 도중에 유대인이 오자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난 베드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자신보다 먼저 사도로 부름 받은 베드로를 존중하면서도 그의 잘못은 비판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무조건 편들기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등과 다툼을 봉합하고 하나 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둘째 방안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화목하게 하는 사도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일어난 결과는 관계의 단절이다. 인간은 하나님과는 물론, 이웃과 자연,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지난 대선 기간에 “심판” 혹은 “응징”이란 표현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용서”와 “화해”란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어떤 사람이 중한 잘못을 범하면 그 사람 뒤에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범죄하면 경책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 주님이 말씀하셨지만 서글프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의 잘못이 주홍 글씨가 되어 버린다. 판단하고 분별하는 일에는 능하지만, 포용하고 관용하는 일에는 서툴고 더디다.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지 않았다. 바울과 바나바는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마가의 문제로 심하게 다툰 다음 각자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이별은 아니었다. 옥중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는 자신에게 요긴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하였다.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다투었지만 서로 존중한 것이다.

 

대선이 끝났다. 비난하고 다투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복음 안에서 용서하고 하나 되어야 한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는 유아적인 자세와 태도를 버려야 한다. 정치 이슈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토론할 수 있는 성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허물을 덮어주고 잘못을 용서함으로 하나 된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세상을 치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갈등과 다툼의 현장 안으로 들어오셔서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후 5:18). 죄 사함을 받는 것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행하는 것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제 우리 모두는 화목의 사도로서 정치적 갈등과 분쟁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