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나는 인물: 벽걸이 융단의 대명사 고블랑
[국립 고블랑 박물관. 조병수 촬영]
제공: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대표 조병수 박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에듀타운로 10
섬유업과 염색업을 겸하던 쟝 고블 랑(Jean Gobelin, 1476년 사망)이 파리에 정착한 것은 1443년이었다. 섬유를 주홍색으로 염색하는 것이 그의 전문이었다. 파리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염색업자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는 바람에 그는 파리 남쪽에 둥지를 틀었 다. 가업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필리 베르(Philibert, 1510년 사망)는 이탈 리아 밀라노에서 온 까나예(Canaye) 일가와 사돈 관계를 맺으면서 사업이 번창하자 지금의 “고블랑 대로”에 많은 대지를 확보하였다(1525년 8월 5 일). 16세기 말에는 그들의 사업이 점차 염색업에서 양탄자 제조업으로 옮겨가 자그마치 150년 동안이나 지속되 면서 벽걸이 융단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기업을 이루고 재산을 확보한 고블랑 가문에서는 왕실 관리로 활동하는 사람도 생겼다. 대표적으로 발타자르 (Balthazar, 1617년 사망)은 여러 분야에서 앙리 4세의 재무를 담당하는 관리로 활동하다가 마침내 영지까지 수여받았다.
고블랑 가문의 중요성은 위그노 신앙을 가졌다는 데 있다. 고블랑과 까나예 가족이 어떻게 위그노에 가담 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559년부터 두 가족의 이름이 샤릉똥(Charenton) 교회의 세례명부 등 여러 명부에 등장하기 시작 한다. 1561년, 두 가문이 현재 생메다르 가톨릭 성당 근처에 있는 큰 대지를 내놓아 오천 명이 앉을 수 있는 위그노 교회가 건축되었다. 예배당은 성탄 주일 직전에 완공되었고 마침 파리에와 있던 떼오도르 베자가 설교를 하였 다. 교회의 마당은 작업장으로 활용되 었다. 1568년에는 까나예 집안 가운데한 사람이 염료를 사러 남프랑스에 갔다가 툴루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1572년 바뗄레미 대학살 때는 다른 가족이 파리의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1601년 4월 29일 국왕 앙리 4세의 요청에 따라, 고블랑 일가는 벨기에 출신 양탄자 장인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제작소를 확장하여 벨기에 풍의 카펫을 생산하였다. 그들의 이름도 샤릉똥 교회에 기록된 것을 보면 개혁파 신자 였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최초로 왕립 융단 제작소를 설립한 것이다. 1629년에 벨기에 사람들의 두 아들 이 사업을 이어받았는데 1650년경에 협력관계는 종지부를 찍었다.
루이 13세 당시 고블랑 저택은 위그 노들의 피신처가 되었다. 1621년 9월 26일의 일이다. 아흐레 전인 9월 17일, 가톨릭과 위그노의 종교전쟁에서 가톨릭 동맹의 수장이었던 기즈 가문의 마옌느(Mayenne) 공작이 몽또방 공성 에서 위그노 지도자 로한(Rohan) 공작과 겨루던 중에 전사하였다. 나흘 뒤화요일에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위그노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주일이 다가오자 폭도들이 더욱 미쳐 날뛰었지만, 용감한 위그노 신자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샤릉똥 교회에 예배하러 길을 나섰다. 정보를 입수한 파리 시장 몽바종(Montbazon)은 위그노 들을 보호하기 위해 궁수와 기병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성난 폭도 수백 명이 오후 3시 쯤 위그노들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 매복하였다가 돌과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위그노들도 포도밭의 막대기를 빼들고 방어에 나섰지만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임을 당하였다. 또 다른 폭도들은 샤릉똥 교회로 가서 문을 부수고 강대상과 의자 그리고 서적을 불살랐다. 다른 폭도 들은 위그노의 집들을 약탈하였는데, 이때 많은 위그노들이 고블랑 저택으로 가서 보호를 받았다.
위그노에 적의를 품은 루이 14세 재상인 콜베르(Colbert)가 1662년 고블랑 공장을 매입하였다. 궁중 화가인 르브륀(Le Brun)이 책임자로 세워졌고 (1663-1690), 이것은 주로 왕실에 고급 융단과 가구를 제공하는 공장이 되었다. 루이 14세의 경제 사정 때문에 1694년부터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1697년에 왕실 융단 공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여러 어려 움을 겪었지만 지금도 이 공장은 국가 재정으로 가동되고 있다.
파리 13구에 고블랑 가문을 기억나게 하는 여러 장소가 있다. 대표적으로 고블랑 대로(avenue des Gobelins), 고블랑 길(rue des Gobelins), 고블랑 전철역(Les Gobelins), 국립 고블랑 박물관(Manufacture Nationale des Gobelin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