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 양극화와 유튜브_강희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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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와 유튜브

강희민 목사_경기중노회 일신교회

위험 수위에 이른 정치 양극화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선언 직후인 2022년 봄, 『총.균.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 국제 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천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보다 인류에게 더위협이 될 문제가 있으니, 기후 변화와 정치적 양극화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해가 갈수록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또한 정치적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방송을 켜면 어느덧 익숙해진 극단적 표현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귀에 들려온다. “극우, 종북 좌파, 친일, 친중, 반국가세력, 빨갱이, 처단…” 둘로 나뉜 집회 광장에선 서로를 향한 거친 비난과 혐오로 가득한 구호들이 쏟아진다. 욕설은 다반사요,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 이념과 진영에 따른 극단적 대립은 일상의 대화 속에도 들어와 있다. 반대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능, 인격, 심지어 신앙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식이다. 이미 상대 진영 사람 들을 악마화하고 있기에, 그들을 향한 비인격 적인 언사와 폭력은 얼마든지 정당화된다. 그럴수록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정치 양극화가 감정의 양극화로 이어지며 사회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신들도 앞다퉈 우려를 표한다. 탄핵 정국이 끝난 뒤에도 양극 화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불씨를 대형 산불로 키우는 거센 바람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새로운 이슈는 아니다.
정치 지도자의 부패와 무능, 그걸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 해묵은 지역감정,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 문제 등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새삼 양극화 현상을 문제 삼는 이유는 여느 때와 달리 훨씬 광범위하고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 다. 이유가 무엇일까. 계엄과 탄핵 정국이라는 굵직한 이슈에 더하여 그것을 확산, 지속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십 년사이 주류 대중매체로 급부상한 유튜브와 사회 관계망서비스(SNS)가 그것이다. 특히 정치 유튜 버들이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진화할 수 있었던 화재를 초대형 산불로 키운 강풍이랄까. 정치 유튜버들의 선동과 부추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까지 극단적인 대립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 라는 말이다. 자극적인 방송으로 배후 선동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그들이 현장에서 집회를 주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현직 정치인들이 구독자 수가 높은 유튜버들의 방송에 출연하여 머리를 조아린다. 대부분 아마추어에 불과하고 저급한 언행을 일삼는 그들이 이토록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생각할 것은 유튜브 자체가 가진 기능적인 힘이다. 엄격한 방송 심의 과정 없이 원하는 내용을 만들고 방송할 수 있는 제작과 유포의 편의성, 휴대폰을 통하여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접근과 소비의 용이성, 거기 더하여 주변 사람들 에게 손쉽게 전파하고 무한 반복으로 재생할 수있는 가공할 만한 확장성까지. 그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방송 플랫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치 유튜버들의 난립과 막강한 영향력을 다 설명할 순 없다. 한 가지 퍼즐 조각이 더 필요하다. 그들을 지금 위치로 올려 준 구독자들이다. 사람들은 왜 그들의 채널을 찾고, 구독하고, ‘좋아요’를 누를까? 그들이 기성 언론사 기자들보다 더 고급 정보와 통찰력을 갖고 있어서인가? 아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을 향해 찰진 욕설을 날리고,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음모론에 더하여 자기 마음에 꼭 맞는 해석과 전망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상위 랭킹에 오른 유튜버들은 구독자 들의 이런 욕구와 반응을 잘 간파한 자들이다.
결국 듣고 싶은 말을 찾는 사람들과, ‘아무말 대잔치’로 대중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돈을 버는 이들의 비뚤어진 공생 관계가 정치 유튜버들의 영향력을 비정상적으로 키웠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정치 유튜버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퍼뜨 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 하다는 말이다. 보수든 진보든 한쪽 방송만 반복 해서 듣는 사람은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아무 리 많이 배운 사람도, 아무리 인생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어쩔 수 없다. 매일 보고 듣는 데서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튜브 채널만 밤낮없이 시청하는 사람이 객관적일 수 있을까? 반대로, 진보 유튜브 채널만 쉬지 않고 보는 사람은 어떤가? 두 경우다 한쪽으로 치우쳤거나 심하면 세뇌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동일한 판단이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스스로가 이념의 우상화에 빠져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 이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앞세우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상대 진영이나 사상을 없애버려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념의 우상화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념적 이원론은 비성경적 이다. 좌파에는 마귀의 영이, 우파에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가. 또는 보수 세력은 악이요, 진보 세력은 선이라고 믿는가. 이런 잘못된 생각에 세뇌될 때 나와 다른 상대편을 악마화하고 과격한 행동까지 정당화하게 된다. 어떤 정치 세력이나 이념 체계도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을 온전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한 걸음 떨어져서 양편 모두를 바라보자. 내가 지지하는 쪽의 잘못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편의 정당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갖도록 힘써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적으로 변하고 거친 언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다. 적잖은 정치 유튜버들이 저급하고 선동적인 언어로 상대 진영을 향한 적개심을 부추 긴다. 그들과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정치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지하는 인물이나 정당을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상관없 다. 동일한 이념 아래 같은 정당을 지지해야만 양극화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하나의 깃발 아래 모으려고 반대쪽을 공격 하고 짓밟는 과격한 언행이 갈등과 대립을 일으 키고 양극화를 초래한다. 평화의 왕 예수님께 배우자. 그분이 보여주신 평화의 길은 로마 제국의 그것과 정반대였다. 칼과 창으로 상대를 죽이고 정복해서 강탈한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 시고 섬기심으로 결실한 평화다. 로마 제국의 방식으로 로마 제국을 이기려 했던 베드로에게 주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상대방의 이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휘두르던 칼을 버리는 것이 양극화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