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리 교육 및 교리 설교의 필요성과 그 실제(1)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호섭 교수(고려신학대학원)가 합신총동문수련회에서한 특강을 요약한 것이다. 교리에 관한 교육과 설교에 유익이 있기를 바란다.
서론
오늘날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들마저도 신조와 교리를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가 신조와 교리를 홀대하고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그런 교회나 신자는 모두 자기 생각대로 믿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제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교리 무용론을 주장한 결과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기록은 “사 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사사시대일 것이다(삿 21:15). 오늘날 우리 시대도 사사시 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여기에 교리가 필요한 중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 신조의 정의와 가치
신조의 정의
벌코프는 신조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적 진리의 조직적 진술’이라고 정의했다. 신조는 교리 가운데 교회가 그 신앙 조항을 공적으로 정한 것이다. 역사적 신조 연구의 권위자인 필립 샤프는 신조를 ‘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신앙고 백, 또는 신앙의 내용을 언어의 형태로 표현하되 그것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여 구원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여기거나 최소한 건전한 기독교회를 유지하기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조는 그 형태나 용도에 따라서 신경(creed), 요리문답(catechism), 교헌(canon), 규범(rule of faith), 상징(symbol), 선언(decree), 신앙고 백(confession)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그중 ‘신앙고백’(confession)은 주로 종교개혁 시대에 나온 신조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종교개혁 시대에 신앙고백의 내용을 어린아이들이나 초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교육하는 자와 교육을 받는 자 사이에 묻고 답하는 형식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요리문답(catechism)이라 한다. ‘신앙의 규범’(rule of faith)은 regula fidei 혹은 regula veritas로서 성경과 신조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신조의 가치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러한 성경적 원리 아래에 성경이 가르치고 믿는 바를 신조를 통해 요약해 왔다.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교회정치, 예배모범)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역사적 신조와 신앙고백, 그리고 요리문답들이 바로 그것이다. 교회가 요약한 신조와 신앙고백들은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을 요약해서 신자의 믿음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고 이단의 공격에 맞서 진리를 수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해 왔다. 우선 신조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교훈들을 요약해 주고, 성경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며, 거짓된 교훈과 생활을 막아주는데 있어서 공적 표준으로서의 방패가 된다. 따라서 신조가 없이는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 나감에 있어서 치명 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회는 여러 신조와 신앙고 백들을 통하여 분열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을 도전하고 허물 려는 포도원의 여우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고 지켜왔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soli Deo Gloria)과 같은이 모든 모토들이 교회를 든든히 지켜낸 교리가 아닌가? 기독교회는 역사적으로 신조와 신앙고 백들을 통하여 순수성을 보전해 왔고 적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 왔다. 신조는 필요 없으며,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함으로 신조와 교리 무용론에 동조하는 것은 현대의 교회를 세속 화와 타락 그리고 혼합주의로 몰고 가려는 사탄의 또 다른 전술 전략의 유혹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2. 성경과 교리와 신조와 신학의 관계
‘성경’(Holy Scriptures)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40여 명을 통해 기록하게 하시고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4-17).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성경의 해석자는 성령이시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 된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무오하며 구원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법칙이다(딤후 3:16; 계 22:18-19).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있으며, 이 권위를 궁극적 권위라고 부른다. 모든 신앙적 논쟁을 결정하고 공의회의 법령들과 역사 속의 모든 사람들의 견해들을 판단하는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표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교리(doctrine)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다. 디모데전서 6:3이나 디모데후서 1:13에서는 가르침 또는 교리를 바른 말씀과 동일시한다.
목회서신에서 말하는 바른 교훈은 바른 교리이 다. 이런 의미에서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교리적 설교는 성경적 설교와 같다. 참된 기독교 즉 복음은 교리적 믿음에 기초해 있으며 이 교리는 복음에 적합한 응답의 방식을 결정한다. 교리는 마치 인간의 몸에 힘과 형태를 부여하는 뼈와 같아서 교리가 없으면 신앙은 형태가 없고, 약하고 무너지기 쉽게 된다.
교의(dogma)란 성경적 원리 하에 성경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요약해 놓은 신앙의 조항들이 다. 교회의 공의회가 제정한 종교개혁적 신앙고 백서들과 요리문답서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교의를 학문적으로 발전시켰는데 유럽에서는 ‘교 의학’이라 부르고 영미권에서는 ‘조직신학’이라 부른다. 전통적으로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분류되는 7가지 교의학의 분과로 나누며, 역사적으로는 각종 신앙 고백서와 교리문답서가 이에 해당한다. 교의는 성경 교리를 통해 논리적 시간적으로 요약 진술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 또는 담론이다. 기독교 신학은 성경과 성경에 대한 역사적 진술들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논한다. 따라서 신학을 한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본 개념들을 조직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신학의 분과는 전통적으로 성경신학, 교의신학, 역사신 학, 실천신학으로 나뉜다. 신학의 주 재료는 성경계시와 학문을 포함한 자연계시이다.
신학이나 교의는 모두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성경 교리로부터 나오는 파생적 권위이다.
궁극적 권위는 오직 성경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신학적 논의가 과연 진리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오직 성경이어야 하며, 성경의 가르침의 총체 로서의 교리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3. 교리 설교의 필요성
1) 교리 설교란?
목사의 모든 교육은 교리적 교육이어야 하며, 목사의 설교는 필연적으로 교리적 설교 즉 성경적 설교여야 한다. 종교개혁의 신학은 앞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표준으로 성경이 교훈하는 바의 총체를 신앙고백문서로 작성했고 성인 성도와 어린이 성도를 위한 교육의 문서로 요리 문답 등을 작성했다. 뿐만 아니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를 실제 교회의 현장에서 암기, 묵상, 강의 그리고 설교 등의 형식으로 가르쳐 왔다. 장로교회라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따라 예배하고 설교하고 목회하는 것이 필연적이 다.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과 성경에 기초한 교의와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하등의 모순이 없다. 성경은 ‘규범하는 규범’(norma normans) 이며 신앙고백서와 신조는 ‘규범된 규범’(norma normata)이다.
교리를 교육하는 방법은 다양하나 설교를 통해 교리를 가장 잘 교육할 수 있다. 교리 설교란 성경의 근본 교리가 설교에 녹아들어 있음을 말하기도 하고,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와 신조와 교리문답들을 설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죄인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이 설교인데, 기복주의와 번영주의, 율법 주의, 윤리적 설교 등은 진정한 설교가 아니다.
『설교자의 일주일』에서 김영봉 목사는 ‘무엇이 설교가 아닌가’라는 주제에서 1. 강의(설명 가르 침, 지식 전달), 2. 연설(철학과 비전 나눔), 3. 훈화(도덕적 훈계, 교정에서 하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4. 해설(에세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5.
잔소리 잡담(손주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교회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6. 선동 선전(교 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몰아가는 수단, 정치) 는 설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2) 교리설교가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교리 설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 가? 무엇보다도 전 성경이 교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인 교리를 담고 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 즉 하나 님의 존재와 속성의 교리, 하나님의 선재성, 전능성의 교리, 삼위일체의 교리 등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이 엄청난 교리를 포괄한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 마지막 두 구절은 종말의 교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교리, 성도의 견인과 재림 소망의 교리 등이 흐르고 있 다. 따라서 교리적 설교는 필연적이다.
둘째로 교리란 공교회가 고백해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공교회는 그동안 각종 공의회를 통해 신앙고백서들을 작성해 왔다. 교리와 교리의 신조화는 역사적 산물이며 교회가 인정한 신앙의 객관적 표준이다. 역사적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의 주관적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요, 개혁파라는 것은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하고 성경을 해석한 신앙의 조항들이라는 뜻이다.
셋째,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명목적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교리 설교는 자신이 구원인 인지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부르신 소명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해 준다.
또한 자신의 예배생활과 경건생활이 성경적인지를 점검하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게 해 준다.
넷째로 교회의 부흥과 소생에 치명적이기 때문 이다. 사도시대, 종교개혁시대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것은 다름아닌 교리 설교였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 난 이후 최초의 사건이 바로 회개와 믿음 교리에 관한 베드로의 설교였으며, 그결과 초대교회가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로마 카톨릭교회를 개혁하고 교회의 참된 생명을 부여한 것 역시 설교였으며, 루터와 칼빈은 이신칭의 교리와 하나님의 절대하신 주권의 교리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갱신시켰다. 교회가 소생 하고 부흥했던 시대마다 복음의 교리가 선명하게 선포되었고 죄에 대한 통렬한 회개와 중생과 회심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다. 신앙생활은 그저 종교생활이 아니었고 생명력 있는 능력이었다.
마지막으로 교리 설교는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의 뼈대를 보여준다. 창조, 타락, 구속, 회복, 새창조, 영광 등의 성경의 큰 주제들과 성경의 역사를 개관한다. 교리 설교는 큰 틀에서 역사와 우주와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준 다. 성경 어디를 펼쳐 보아도 우리는 교리를 제외 하고 설교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설교 하려면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지상의 교회와 천상적 교회라는 교리를 전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와 재림을 통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승리 교리를 제외하고 계시록을 참되게 설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