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회의 신앙고백과 한국교회 신학의 현주소
< 신재원 집사, 대덕한빛교회,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 계승해 공교회의 신앙고백부터 회복해야”
지난 3월 29일, 온누리교회 양재예배당에서 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가 열렸다. 궂은 날씨에도 지방에서 먼 길을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기꺼이 학술대회를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학술발표가 그만큼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도르트 회의와 한국 교회’라는 아주 시의적절한 주제에 더하여,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다섯 명의 교수들이 발제를 맡았다. 학술발표의 주제도 주제였지만 발제자의 면면을 보면 아무 때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발표회가 아니었다.
1. ‘도르트 신조’ 다룬 독보적인 학술대
첫 발제를 맡은 김요섭 교수(총신대)는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서의 교회의 일치:도르트 회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도르트회의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7세기 초 네델란드의 독특한 정치적·종교적 상황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공유할 수 있는 도르트 회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콘텍스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제에서 이남규 교수(성경신대원)는 도르트 총회에 참석했던 ‘국외 총대들’의 평가문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분석한 ‘예정인가, 후정인가? 항론파 제1항에 대한 도르트 회의 총대들의 논의와 결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총대들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궁극적인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여 선택은 후정이 아니라 예정임을 분명히 했으며, 나아가 그들은 예정론의 유익을 알았기에 예정을 가르치는 방식까지도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발제에서 김은수 교수(평택대)는 ‘도르트 신조의 속죄론 이해: 형벌대속적 제한속죄’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속죄론을 다루면서 도르트 신조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논의까지 폭넓게 다루되, 일목요연하게 속죄론을 구분하여 정리함으로써, 개혁파가 고백해야 할 속죄론은 그 성격에 있어서 ‘형벌대속적’이요, 그 범위에 있어서는 ‘제한적’임을 분명히 했다.
네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병훈 교수(합신대원)는 “도르트 신조가 고백하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다루었다.
그는 먼저 성도의 견인 교리에 따른 성도의 범위를 분명히 한 후에, 도르트 신조에서는, 항론파의 주장과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완전하게(totaliter)’ 그리고 ‘최종적으로(finaliter)’ 견인케 하심을 분명히 한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성도의 견인교리에 대한 다른 개혁파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바를 살펴봄과 동시에 루터파와의 차이를 통해 도르트 신조가 말하는 성도의 견인교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마지막 발제는 ‘도르트 신조의 유기론’이란 제목으로 한병수 교수(합신대원)가 맡았다.
그는 어거스틴이 유기를 설명했던 방식인 결함적 원인(내버려두심 혹은 은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의 개념이 내용적으로 도르트 신조에도 녹아 있음을 주장하며, 결론적으로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이 무자비해 보이고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유기의 원인은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뜻 외엔 어떠한 것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판단중지’ 반응을 요구한다며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2. 여전히 갈 길이 먼 개혁주의 학술대회
발제를 맡은 교수들 대부분은 일차자료에 근거하여 도르트 신조의 가르침을 실감 나게 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관련 교리에 대한 개혁파적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보다 폭넓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논문을 발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일반 목회자나 목회자 후보생 및 신학 비전공자인 일반 성도에 대한 배려가 엿보였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듣고 이해하기에도 그리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설명은 친절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발제를 맡으신 모든 교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준비하신 모든 내용을 다루기에는 발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교수님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발제자들은 대체로 시간에 쫓겨서 중요한 신학적 내용을 너무나도 축약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남겼다.
공교회의 위대한 유산인 도르트 신조가 요약하는 이른바 ‘TULIP 교리’는, 한마디로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적·정통적 가르침이다. 물론 개혁주의는 TULIP으로 한정될 수 없으며 보다 풍성함을 가지겠지만, TULIP이야말로 개혁주의 구원론의 기초요, 시작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자. 개회식에서 이승구 교수도 언급했다시피, 이번처럼 도르트 신조에 초점을 맞춘 학술회가 열린 것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도르트 신조에 대한 대중적인 책도 이제 겨우 두 권이 출간되었을 뿐이다(『도르트 신조 강해』<크르넬리스 닐 프롱크, 그 책의 사람들, 2012>, 『도르트 신조』<최찬영, 예영커뮤니케이션, 2013>).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개혁주의나 개혁신앙이라는 말은 사실 내실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TULIP의 가르침을 견지하고 전파하기는커녕, 여전히 항론파가 주장했던 잘못된 교리가 만연하다. 이 같은 현실을 인지한다면, 이번 학술발표와 같이 TULIP의 신학이 바르게 선포되는 기회가 더 많아야 할 것이다.
TULIP이라는 용어에서 나올 수 있는 오해들을 논의하는 신학적 논의라든지, 타 신학과의 대화를 위한 논의 등을 할 때가 아니다. ‘개혁주의’가 성경적 참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TULIP을, 그리고 더욱 TULIP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타 교파에 대한 배타심의 표현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우리가 문제의 발단이며 우리 안의 죄가 빌미를 제공하기에, 더욱 철저하게 자기 자신은 뒤로 미루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향해 시야를 좁혀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학술 발표회가 더욱 많아지길 소망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TULIP과 개혁신앙의 강조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며, 여전히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성경에 가장 충실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이려했던 종교개혁 선진들의 가르침 위에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서서 공동의 신앙고백을 함께하고, 다시금 신앙고백으로 하나됨을 확인하는 놀라운 일이 이 땅에 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거룩하고 구별된 주님의 교회를 하나로 세우려는 옛 시대 선진들의 먼저 된 노력이, 오늘날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에, 오늘날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나아갈 진정한 방향이 설정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한 자리를 열심히 준비하여 신학자와 목회자들만의 장이 아닌 필자와 같은 일반 성도들도 함께 하는 장으로 이번 학술발표회를 개최한 한국장로교신학회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