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논단] 주일학교의 역기능을 막아야 한다_양승헌 목사

0
8

양승헌 목사/ 세대로교회 원로, 합동신학대학원 석좌교수, 파이디온선교회 공동설립자

‘역기능’은 본래 목적한 것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기능을 말한다. 영어로는 ‘디 스펑션’(dysfunction)인데, 기능이라는 단어 앞에 ‘dys’라는 접두어가 붙어 형성된 말이다. 헬라어에 뿌리를 둔 이 접두어 ‘dys’는 나쁜, 어려운, 손상된, 비정 상적인, 작동되지 않는 그런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주일학교라는 중요한 교회 기관 앞에 이런 접두어를 붙여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주일학교는 예수님이 만드신 기관이 아니다. 주일학 교는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에 의해 1780년 영국 글로체스터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주일 학교는 교회의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1. 주일학교의 순기능

미국에서 그랬듯이 주일학교는 선교 사들에 의해 한국에 정착될 때도 교회의 매우 중요한 사역기관으로 작동해왔 다. 한국교회 부흥기 주일학교는 복음을 확산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목사에게 주일학교 사역은 목회자로 자라는 훈련장이 되었다. 규모나 시설, 전문성이나 투자 면에서 학교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학교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참되신 하나님을 알고, 생명의 주를 만나고, 그분의 말씀 안에 사는 것을 훈련한다. 세상 어느 교육기관도 할 수 없는 위대한 학교이다. 어느 학교, 어느 교수, 어느 교육기관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진리를 가르쳐주는가? 오직 주일학교뿐이다. 주일학교 사역의 동기는 우리 왕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과 순종이다. 주일학교는 급여가 없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 도, 힘들고 고단해도, 상급 기관의 감사와 감독이 없어도 유지된다. 주님을 사랑하는 한 명의 교사가 있고 그가 사랑 으로 돌보는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있다면 주일학교는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주일 학교가 순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다.  1990년대 이후 주일학교는 점점 더힘을 잃어가고 있다. 학생 수는 현저히 줄어들고 주일학교는 부모들과 아이들의 관심과 기대에서 멀어져갔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으로 주일학교를 떠나고 교사들은 맥이 빠지고 교사 사역은 교회 안의 3D 봉사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삶에 대한 주일학교의 영향력은 점점 미미 해지고 있다. 작은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 교가 없어지더니 급기야는 한국교회 절반에서 주일학교까지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2. 주일학교의 역기능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주일학교의 역기능이 드러나는 것이다. 매우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긴 주일학교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독소가 되고 있다. 주일학교의 몇 가지 역기능을 가볍게 보면 우리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첫째로 부모들의 자녀 신앙 양육의 책임과 기능을 약화시킨 것이다. 신앙 양 육의 책임을 가정에서 주일학교로 이양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좋은 교회 좋은 주일학교에 출석시키면 아이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는 생각으로 교회를 쇼핑하듯 옮겨 다닐 정도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매주 교회학교에 데려다 놓고 다시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신앙 교육 책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둘째로 주일학교는 신앙공동체를 학교로 바꾸어 놓았고 다음 세대를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 학생’으로 바꾸어 놓았다. 담임 목사는 교장이 되고, 이들을 영적 성숙 으로 이끌어야 할 교사들은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야 하는 양육의 목적이 성경 지식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변경되고 말았다. 아이들 세대와 어른 세대는 예배부터 양육까지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분리되었다. 매주 아이들은 어른들 중심의 신앙공동체와는 시간도 공간도 분리된 주일학교에서 자라게 되었다. 교회조차 이들을 2등급 교인으로 여기는것 같다. 그러니 주일학교 한 부서를 마치고 올라갈 때마다 많은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3. 주일학교의 구조 변경

집이 되었든, 신체 조직이 되었든, 기계가 되었든 기능이 안 되면 수술하고 고쳐야 한다. 주일학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주일학교의 전통적 구조가 아니라 주일학
교의 기능이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교회 교육의 기능을 방해하는 모든 구조를 손봐야 할 때다. 이미 우리에게 닥쳐온 상황이 과감한 구조적 수술을 압박하고 있지 않는가? 저출산의 영향 으로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가고 있다. 주일학교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치부에 2명, 초등부에 한 명, 청소년 1명 밖에 없는 교회라면 어떻게 전통적인 구조의 주일학교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미 한국교회 절반은 주일학교가 없어 졌고, 그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 예상된다. 대형 교회가 아닌 한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주일학교의 구조는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에 밀려 없어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다음 세대 신앙 양육을 주일학교가 아닌 신앙공동체 전체의 일로 끌어 안아야 한다. 세대통학교육을 주장한존 웨스터 호프 3세는 1960년대 이미 주일학교는 그 기능이 죽었다고 선언했 다. 우리는 주일학교가 다음 세대 신앙 양육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60년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인식하게 된 것같다. 존 웨스터 호프 3세는 다음 세대가 우리의 믿음을 대물림하기 위해서는 주일‘학교’가 아닌 ‘신앙공동체’ 안에서 자라야 함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주일 학교가 아닌, 하늘 가족 공동체 안에서 자라도록 교육 생태 환경을 바꾸어야만 한다. 교육과 목회, 다음 세대와 장년, 교회와 가정, 세대와 세대의 분리의 틀을 깨고 통합의 틀로 거듭나야 한다.
다음 세대 교육의 책임을 주일학교나 교육부서에서 온 공동체로 확장해야만 한다. (2) 부모들이 다음 세대 양육의 1번지 책임과 기능을 감당하도록 훈련하고 도와야 한다. 부모의 영적 성장과 헌신은 주일학교가 대체할 수 없는 양육변수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그런 책임을 감당할 만큼 성숙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주일 학교에 출석하는 아이 중 안 믿는 가정 에서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주일학교는 제2의 가정이 되어야 하고, 주일학교 교사는 제2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혹은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들 자신도 자란다.
(3) ‘전도사 주도적’ 주일학교 교육을 ‘평신도 주도적’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전도사 제도는 한국교회에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내일을 이끌고 가야 할 가까운 미래의 목회자들이다. 더 많은 시간 공부하고, 더큰 틀에서 하나님 나라에 이바지할 하나님의 종들로 준비되도록 도와야 한국 교회의 내일이 선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이들이 곧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갈 사람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전도사들을 지원하고 세우는 일에 인색 하다. 과연 그것이 ‘남 좋은 일’하는 것인가? 그러다 보니 많은 전도사들도 아이들에게 쏟는 마음과 시간에 인색해지 고, 기회만 된다면 더 여건이 좋은 교회로 옮겨갈 기회를 찾게 만든 것은 아닐 까? 전도사들은 단지 값싼 임금으로 아이들을 돌보다 떠나는 교회 교육의 용병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내일을 위해 더 많이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되고 지원되어야 할 자산이다.

또 다른 면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주일학교를 맡은 전도사만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중요하다. 그들은 한 사람의 사역자가 설교연습, 목회실습을 하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의대 입학했다는 것 때문에 그 에게 내 아들을 수술하도록 맡길 부모가 있겠는가? 그런데 신학교에 입학한 사실로 그에게 주일학교 지도자라는 직무와 사역을 주고, 말씀을 다루는 법도, 영혼을 다루는 법도 모르는 채 다음 세대를 이끌도록 위임하는 것이 옳은 일인 가? 전도사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역교회 기독교 교육을 섬길 실제적인 훈련을 요구하고 시간과 재정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파이디온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이 교육전도사들을 세우는 훈련과 정을 마련하여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조차 어려운 현실도 있다. 지방 교회들이나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전도사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할 형편도 되지 못한다. 전도사가 없으면 교회 교육도 없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보통교회의 주일학교는 집사님 들이 이끌었고, 중학생만 되어도 반사로 섬겼다. 이들은 그런 섬김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며 신앙공동체를 지켜냈다.

아이들이 떠나 휑해진 교회에서 더는 전통적 주일학교 구조를 유지할 수도 없고, 전도사를 구하기 어려운 교회 내외적 여건에 봉착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다음 세대 교육이 표류하거나 소멸 하는 것을 안절부절 바라볼 것이 아니 다. 교회를 내 가족으로 사랑하며 섬길 동기와 애정과 열정이 준비된 그 공동체의 헌신된 평신도를 교육지도자들로 세움으로써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이 계속 되게 해야 한다. 필자가 올봄부터 파이 디온 선교회와 함께 교회교육을 관제할 지역교회 평신도 교육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사 학교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이유다. 주일학교의 역기능을  막 아내고 순기능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구조적 변화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