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정암신학강좌 강의1]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정암의 이해와 ‘개혁파 변증’에 대한 정암의 가르침_이승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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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정암의 이해와 ‘개혁파 변증’에 대한 정암의 가르침

이승구 교수(합신 남송 석좌교수)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강조는 정통파 개혁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토대다. 정암(1905-1988)은 정통파 개혁신학을 한국 땅에 뿌리 내리게 한 장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평생에 걸쳐서 성경의 무오성을 매우 강조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일을 하였다. 이 일과 더불어 그는 개혁파 변증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그의 평생 개혁파 변증을 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신약학 교수였다는 정암의 지위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놀랍게도 개혁파 변증학을 직접 가르쳤다.

개혁파 신학자들은 모두 성경이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져서 정확(正確)하고 오류(誤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 이승구, 『교리사』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23), 830-66을 보라). 정암은, 그가 평생 존중한 헤르만 바빙크를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부리시는 저자들의 자유와 인격과 특성을 그대로 살려 사용하시면서 그의 말씀을 과오 없이 기록하게 하셨다”는 유기적 영감설이 “개혁주의에서 전승해 오는 성경 영감설이다”라고 하신다. 정암은 “바빙크는 영감받은 성경 기자들에게 충분한 자유 활동이 있었던 동시에, 기록상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성령의 전적 동행이 있었음을 확언하였다”고 하면서, 그리하여 성경의 기록은 “전적으로 신적이었고 전적으로 인간적이었다”는 말까지를 인용하여 제시한다. 이런 유기적 영감설은 기계적 영감(mechanical inspiration)설과 정암이 “능력 부여설”이라고 번역한 역동적 영감(dynamic inspiration)설과 대립되는 것이다. 유기적으로 영감된 성경은 “그 정도와 범위에 있어서는 만전(萬全)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의 온전성이란 정말 모든 의미의 온전성이어서 글자 하나하나에까지 미친다는 의미에서 “축자(逐字) 영감”(verbal inspiration)이라고 표현하기를 즐겨하였다. 이를 합해서 전통적으로 “만전(萬全) 축자(逐字) 영감설”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암은 성경의 무오성을 확신하였고 평생을 그 무오한 성경을 주석하고, 신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그 무오한 성경에 근거해서 목회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했다.

정암은 성경의 오류 없음이 “원본 성경에 대해서 가지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사본 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사본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문서들의 전달 과정과 비교하면 사본상의 차이도 그렇게 큰 것은 아니고, 따라서 신약성경의 사본들은 상당히 믿을 만하며 그로부터 원본에 가까운 것을 추구해 갈 수 있고 우리는 그 원본이 무오하다고 믿는 것이다.

정암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장으로 변증에 있어서 개혁파적 입장에 충실한 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Cornelius Van Til의 강조점을 나타나는 말이다. 코넬리우스 밴틸에게서 변증학의 가르침 받았던 정암은 항상 변증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정암은 밴틸의 학생답게 개혁신학에 일치하는 변증학, 전제주의 변증학(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을 강조하고 가르치셨다. 정암은 밴틸을 상당히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고 사실들을 하나님의 해석대로 (그러나 성경적 해석대로) 제시하는 방법이다.” 정암은 밴틸과 동일하게 불신자가 억누르고 있는 그 안에 있는 신의식(神意識, sensus deitatis, or sensus divinitatis)이 접촉점이 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불신자가 그 신의식을 불의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만 효과를 낸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에 두 번째 유학하던 시기인 1939년 4월에 미국 장로 교계지(The Presbyterian Guardian) 지에 실린 정암의 글은 정암이 밴틸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했으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변증하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중 한 부분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즉, 코넬리우스 밴틸은] 기독교 유신론을 철저히 철학적으로 변증함으로 칸트와 플라톤의 체계에 포함된 모든 인간의 체계가 의지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밴틸 박사야말로 현대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터뜨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 위대한 신학자는 비기독교적 공격에 대하여 대항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변호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의 체계는 단순한 인간의 사변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제시된 방어 체계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편이다. 주께서 한국에서 그의 진리를 방어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시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적 태도가 성행하고, 변증에 있어서는 밴틸이 그렇게 변증해서는 안 된다고 하던 소위 ‘고전적 변증’(classic aplogetics)이 주도하고 있다. 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전제주의적 변증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드물고, 심지어 전제주의적 변증은 가르치지도 않고, 또 가르쳐도 다들 피하여 가려고 하는 상황이다. 정암은 정확무오한 성경을 전제하면서 하는 전제주의 변증을 가르치기 원했고, 다시 그런 입장이 이 시대에 굳건히 드러나기를 바랄 것이다. 정암이 강조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전제주의적 변증이 이 땅에서 굳건히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있게 될 전제주의 변증의 르네상스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