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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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몇 년 전부터 취미생활로 사립합창단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는 중,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가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도대체 어떤 만남이길래 어떤 바램도 없고, 다른 무엇을 바라는 것이 죄가 되기까지 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노래 가사와 아직도 불만투성인 나의 만남이 대조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 어둠 속에 숨고 싶었다. 물론 전에도 여러 번 듣고 부른 곡이었지만, 그날의 파장은 무딘 내 심장을 숨이 찰 만큼 내리쳤다.

사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이 곡은 연인들을 위한 사랑 노래도, 10월에 유행하는 노래도 아니었다. 시크릿 가든이 <봄의 세레나데>로 발표된 원곡을 한혜경씨가 작사를 의뢰받아, 아들을 출산한 5월에 시작해서 그해 10월에 완성한 곡이다. 처음엔 아들 출산 달인 <5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제목을 정했다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바꾸어서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다. 작사가 한혜경씨는 자기 몸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이 그녀가 살아가는 모든 이유, 그녀가 꿈을 꾸는 모든 이유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들은 작사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예 연인과의 만남으로 단정하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 죄가 될 만큼 숭고한 만남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축복된 일인가? 이런 만남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요,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이런 삶을 추구하고 향유 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더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시39:7)”라고 고백했다. 안개와 같은 허무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이기에 그 주님만을 소망하며, 그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과연 주님을 만난 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가사처럼 그 누구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한 사람이 되었다.

가진 게 없어서일까? 욕심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나는 예수를 믿은 지 수십년이 되었고, 평생 목회자로 살아왔음에도 불만족한 게 너무 많고, 아직도 구할 게 너무 많다. 주님에게도 그리고 아내에게도. 다윗이라고 어찌 인간적으로 원하는 바가 없었겠는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당연히 부족한 게 있었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주님 안에서 용해되고 수용될 수 있었으리라.

그런가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헐벗고 굶주렸던 바울 사도는 “내겐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 자(빌 4:18)”라고 고백하였다. 어찌 보면 위선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 없는 진실한 그의 고백이었다. 그에겐 부족한 것도, 반대로 풍족하다는 의식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에 이 두 가지의 모순이 그리스도 안에서 효소처럼 녹아내려, 아무것도 갖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처럼, 자족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다윗에게서나 바울에게서나 한가지 공통점은 “주님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인생(성도)에게 있어서 주님은 모든 것의 전부인 셈이다. 내가 오늘도 주님에게나 아내에게, 바램이 많고, 요구가 많은 것은 내가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하고, 주님이 부족한 것이리라.

마틴 부버(유대계 종교철학자, 1878~1965)는 우리 인간의 모든 참 삶은 만남에 있다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될 만큼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가끔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그 배후에 불행한 환경, 불행한 부모와의 만남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불행한 만남도 우리 인생의 최고의 만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 안에서 다 치유되고 회복될 것이다.

내가 진정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내 안에 있을 때, 10월 한 달만이 아니라, 1년 열두 달이 내내 멋진 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