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109회 총회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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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회 총회를 앞두고

 

총회를 앞두고 몇 가지를 제언한다. 일반적으로 총회가 새로운 회기를 맞이하면 새로운 목표를 천명한다. 여기에는 의장의 평소 의지와 상황인식이 크게 작용한다. 새로운 목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단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일으키며 신뢰도를 높여준다. 그런데 새로운 목표를 강조하다 보면 지난 회기에 시도하던 여러 노력이 희석되는 위험이 따른다. 새 총회가 새로운 이슈를 제시하는 것도 귀하지만 전 총회들과의 연계성을 잘 유지하는 것도 귀하다. 예를 들어 전전 총회는 작은 교회 살리기를 부각하였고, 직전 총회는 개혁된 교회의 이념을 강조하였다. 이번 총회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함께 이전 총회들이 추구했던 사업과 이념을 되도록 잘 살려내기를 바란다.

우리 총회는 한 해 동안 여러 행사를 치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가장 중요한 공식 행사는 교직자 수양회이다. 교직자 수양회는 매년 비슷한 문제점을 보이지만 개선이 안 되고 있다. 현직 목회자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인데, 문제 해결을 위해 참석자의 연령 분포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참석하는 수효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이기 때문에 참석의 이유와 불참의 이유를 분석해 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부부가 등록할 때 비용이 배가되는 부담감이 불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등록비를 낮출 방도를 찾아야 한다. 수양회에 오기는 했지만, 미자립 목회로 위축감을 느껴 막상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자로 배정된 분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데 사전에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수양회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근자에 총회와 신학교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자 간의 대화 부족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고, 신학생의 급격한 감소로 목회자 수급에 차질을 빚는 실정을 맞이하면서 냉기류가 확실해지더니, 급기야 야간 신학과정이나 인터넷 신학과정의 신설, 신학교 직영, 총회 산하 대체 신학교를 설립과 같은 여러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차제에 총회와 신학교가 의견을 교환하고 공유할 창구를 만드는 것은 긴급한 사안이 되었다. 예컨대 양쪽의 대표단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신학생의 감소를 신학교의 책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총회 산하의 교회들이 신학생 보내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목사와 선교사 소명을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신학생 감소의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총회는 교계의 흐름과 현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예배 형태의 변화나 설교 방식의 변화 같은 것이 성경과 신학에 옳은지 잘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핫이슈로 떠오른 “서울-인천 제4차 로잔 대회”에 대하여 총회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로잔 대회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고 대회 후에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총회는 이 사안에 대하여 짧은 시간에 단순한 흑백논리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긴 안목을 가지고 공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로잔 대회를 전반적으로 면밀하게 연구하게 하고, 찬반의 견해를 들어보는 지상 토론을 여는 것도 공정한 평가에 도움을 줄 것이다.

총회는 사회를 향해 분명하게 성경적 기독교의 견해를 표명하기 바란다. 그동안 우리 교단은 앞장서서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퀴어 행사 같은 것을 반대하는 선명한 입장을 보여주었는데, 교단 내의 명석한 브레인을 가동하여 계속해서 그 입장을 견지하면 좋겠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 그리고 난민 유입이 장차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불거질 것이며 결국은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내다보면서 초미의 관심을 갖고 미리부터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도덕성을 지키도록 정계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도 총회가 할 일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 정치가들이 각성하여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촉구해야 한다. 또한 나라의 근간을 갉아먹는 정치 양극화에서 한쪽에 성급하게 편승하지 말고 냉철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총회는 정치의 균형을 잡아 나라 세우기에 힘쓸 사명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