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목사와 은퇴(하)_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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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은퇴(하)

원영대 목사(부천평안교회 원로)

 

종종 목회가 여행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떠날 때, 설렘을 안고 비행기의 좌석을 찾아 앉으면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한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가속하면 긴장하고 바퀴가 노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으면 안심하게 되지만 수시로 벨트를 매야 할 상황이 반복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정의 마지막은 착륙이다. 아무리 성공적인 여행을 했다고 해도 비행기가 활주로에 곤두박질친다면 의미가 없게 된다.

‘곤두박질’이라는 말이 투박하긴 하지만 착륙하다가 곤두박질히는 경우가 은퇴하는 목사들에게서 종종 발생한다. 그야말로 엉망이 된다는 뜻이다. 목사에게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가 ‘명예’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불미스러운 일들이 뜻하지 않게 발생하게 된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 후임자 선정과 후임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후임자 선정에 관한 것이다.
후임자를 선정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간혹 ‘목사 세습’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세습’이란 세속적 용어가 교회에서 쓰이는 것조차 부적절하다. ‘세습’이란 말 대신 ‘승계’라는 용어가 낫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식에게 리더십이 승계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다. 은퇴하는 목사의 의지와 욕심이 배제된 상태, 교인들이 원한다면 그것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후임자 선정으로 인해 사역 막바지에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유는 주의 교회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탐욕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서 후임자 선정은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후임자와의 관계다.
후임 목사와의 관계가 좋지 못한 분들을 종종 본다. 어떤 분들은 은퇴 전과 같이 교회에 출석하겠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아예 멀리 떠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엔 정답이 없다. 다만 후임 목사가 소신껏 목회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별히 개척해서 교회를 안정되게 이룬 분들이 은퇴하고도 교회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1부 9시 예배, 아내와 함께 강단 왼쪽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는다. 첫 번째 줄에는 은퇴한 장로님 부부가 앉아서 적당히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예배가 끝나면 천천히 교인들과 인사도 나누며 맨 나중에 담임목사와 악수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은퇴하고 1년 7개월이 지났는데 피차간의 배려로 담임목사 부부와도 종종 식사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후임 목사가 훌륭하게 잘되도록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고, 후임 목사는 은퇴한 목사에게 종종 안부도 묻고 자문을 구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은퇴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은퇴를 앞둔 분들은 이미 은퇴하신 분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자주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인 이드로가 떠나려 할 때 모세가 그를 길잡이로 붙잡았던 것처럼, 안 가본 길을 갈 때는 먼저 걸어간 분들의 경험과 지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근자에 나는 어느 교회 대리 당회장으로 부름을 받아 공동의회 전에 당회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장로님들은 하나같이 은퇴하는 목사님에 대하여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은퇴하는 목사님은 교회의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최소한의 사례가 책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이 흐뭇했다.

누가 진정 성공한 목회자인가? 누가 온전한 목사인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 애쓰며 살다가 명예롭게 은퇴한 사람이다. 순간의 탐욕으로 인해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이 다시 없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