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의미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유다 총독으로서 느헤미야는 12년의 재직 기간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돌아갔지만 곧 다시 왕을 설득하여 유다 총독으로 재임했다. 이는 전보다 더욱 개혁에 힘을 기울이기 위함이었다.
느헤미야는 먼저 성전 제의를 확립하고 십일조를 거두어 정직한 재무관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장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문을 온 종일 닫아 두게 하였다.
또한 이방인들과의 통혼으로 인해 태어난 자손들이 히브리말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한 손자가 대적자인 산발랏의 딸과 혼인했다는 이유로 그를 국외로 추방시켰다.
이처럼 강력한 느헤미야의 개혁에서 이방인과의 통혼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대인 신앙 공동체에 대한 정체성 확립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느헤미야서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배타주의에 근거한 근시안적인 사상을 가지고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신령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겉으로는 배타주의로 보여졌을 것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결코 이방인을 배척하지 않았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정당한 신앙을 고백한다면 언제든디 그들을 신령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장차 새롭고 신령한 공동체로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인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국가 체제를 갖추지 못하게 하였을지라도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리진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 체제를 갖추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 왕국 이후 왕국의 멸망으로 인하여 그들이 잃어버린 국가적 형태에 대한 가치나 의미를 구태여 다시 회복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은 새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태어날 신약 시대의 교회를 태동케 하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였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역사관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은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을 예표하는 기관들이다. 곧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