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장로교회와 신앙 표준문서

0
27

한국 장로교회와 신앙 표준문서

합신 총회의 신학연구위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표준문서(1647년 판)의 번역개정 작업을 만 7년여만에 끝마쳤다. 총회가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신학연구위원회에 번역개정 작업을 맡긴 것은 신앙 표준문서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연구위원회는 표준 신앙문서 원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번역 작업을 마쳤다. 이 번역본은 원문의 뉘앙스를 잘 살렸고, 가독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신학적으로 신뢰할 만하여 완성도가 매우 높다.

이것은 우리나라 장로교회사를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의미가 깊은 역사적인 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온 장로교 선교사는 1907년에 독립노회를 구성하기에 앞서 1902년에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한 ‘교회 표준조례번역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에서 1903년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교회의 신앙문서로 채택하였으며,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는 1904년에 소요리문답을 5,000부 출판하였다. 1905년에는 인도연합장로교회의 ‘12신조’가 향후 조직될 한국 장로교회의 신조로 채택되었다. 다만 한국장로교회는 12신조를 받으면서 인도연합장로교회와 달리 웨일즈 칼빈주의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를 삭제하고, 대신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을 명시하였다. 그리하여 한국 장로교 독립노회는 12신조를 채택하면서 동시에 소요리문답을 채택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문답을 참고문헌으로 승인하였다.

이처럼 한국 장로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위한 교회 사역의 근간으로 신앙 표준문서를 채택하는 일에 처음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회 각 교단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교단의 신앙고백서로 채택하는 일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이를테면 합동 측은 1963년에, 통합 측은 1968년에, 고신 측은 1969년에 각각 총회에서 승인하였다. 미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1647년 판을 몇 차례에 걸쳐서 수정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각 교단 총회가 받아들인 신앙고백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합동 측은 미국 1788년 수정판을 따라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조항을 일부 삭제하였고, 또 1887년 수정판을 수용하여 사망한 배우자의 근친과의 혼인을 금한 조항을 삭제하였으며, 1903년 수정판에서 로마 교황에 대한 조항을 삭제한 것을 따라 이 조항을 삭제하였다. 고신 측은 처음에 1647년 판을 채택했으나 1975년에 1903년 수정판을 받아들였다. 1903년 수정판은 오순절적인 부흥 운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절충한 특징을 갖는다. 통합 측이 채택한 것도 1903년 수정판이다. 이후 통합 측은 신정통주의적이며 성경의 무오성을 훼손하고 사회복음적이라 비판을 받은 미국 연합장로교회의 1967년 판을 수용하려다 실패하자 1986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삭제하고 ‘성령에 대한 고백과 선교’ 항목을 추가하였으며, 1997년에 이러한 진보적 신학을 반영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덧붙여 채택하였다.

기존에 우리말 번역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들은 가독성이 약하고 일부 원문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아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이 요청됐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합신 총회가 채택한 1647년 판 원문과 그 신학에 충실한 번역문을 내놓은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장로교회 교단들에게 커다란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는 총회에서 이 번역문이 승인되고 총회 헌법에 실리기까지 아직 남은 절차가 있지만, 총회 산하 지교회가 이를 사용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우 커다란 유익을 줄 것임은 지극히 분명하다.

이제부터 할 일은 지교회에서 이 표준 신앙문서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의 교훈을 담고 있는 표준 신앙문서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역시 일하실 것이다. 합신 총회 산하 모든 목사를 비롯한 모든 교회 직원은 이번에 새로 번역된 신앙문서를 읽고 익혀서 장로교회의 신앙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워가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