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묵상과 적용
이용세 목사
(율하소망교회, 본보 논설위원)
성경을 대하는 목적은 말씀으로 살기 위함이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과 말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디모데후서 3:17 말씀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성숙하기 위함’이며, 둘째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그런데 신자들 사이에서도 말씀으로 전인격이 변하고, 삶이 변한 신자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인정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매주 교회에서 설교를 들었는데 왜 이런 답답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공부했는데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지속되는 것일까? 심지어 수십 년간 5,000번 이상의 설교를 하는 설교자조차 말씀으로 전인격이 미미하게 변하거나 아예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말씀은 분명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오랜 기간 동안 말씀을 듣고 읽고 전하기까지 했는데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렇게 성경을 많이 접하면서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런 끔찍한 현상은 성경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말씀 사역자가 자신이 전한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들어봤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완벽한 진리이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구원뿐 아니라 구원 그 이후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특히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러면 기존에 말씀을 대했던 말씀 듣기와 읽기와 공부가 불필요하다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방법을 통해 말씀을 아는 것은 언제나 꼭 필요한 일이고 유익하다.
문제의 핵심은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성과 욕망과 자기중심적 성향은 중력과 같이 강하고 집요해서 피상적인 말씀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거기다 사탄이 변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현실에서 말씀을 가볍게 대하는 것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것을 오늘 한국교회에서 오랜 기간 임상하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증거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이제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듣고 읽어 아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진단을 했다. 심지어 말씀을 깨닫고 은혜받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하나 그것만으로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여기에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고난을 통한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부분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요구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묵상과 적용이다(수 1:8, 시 1:1-2, 눅 8:15). 그런데 한국 교회 말씀 생태계를 보면 설교를 통해 은혜받는 것이 대세다. 거기에 읽기와 공부로 성경을 알아간다. 그러나 묵상과 적용은 부재하거나 부실하다. 설교 듣기나 성경 공부가 지식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묵상과 적용까지 가지 않고 해석에 머물 때가 많다. 묵상은 말씀을 소화하여 내면화하는 것이다. 적용은 말씀을 인격과 삶에 접속하여 순종하는 일이다. 이는 말씀을 주신 목적인 변화와 순종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본문 연구와 해석은 묵상과 적용을 잘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지 최종 목적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기 위해 그 동안 잃어버린 두 링크(묵상과 적용)를 찾아 인격과 삶에 연결시켜야 한다. 묵상을 통해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형성하시고 창조하신다. 진리의 영은 적용을 통해 ‘그 때’ ‘거기서’의 말씀을 ‘오늘’ 여기서‘의 말씀으로 연결시키셔서 순종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