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원하신 왕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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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왕 앞에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것은 해 바뀜이다. 날이나 달의 바뀜도 그렇지만, 해의 바뀜은 시간에 쓸려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하루가 끝나는 자정 언저리에는 초침처럼 째깍거리며 바삐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지고, 월말의 늦은 오후에는 분침이 썩둑썩둑 시간을 잘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해가 바뀌는 시점에는 열두 칸을 차례로 거침없이 점령하는 시침이 다음 칸을 무자비하게 침략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분명히 시간의 움직임은 물리적으로 일정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의 압박감은 동일하지 않게 다가온다.

우리가 시간의 압박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시간의 변화를 지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시간의 경과를 물리적으로 파악한다. 무엇보다도 빛과 어둠이 반복되는 낮과 밤은 시간의 흐름을 자동적으로 인지시킨다. 매일 같이 동이 트고 해가 지는 것으로 우리는 시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주 옛날에는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 같은 매체들을 통해 시간을 읽었다면, 근대에 이르러는 기계식 시계들이 시간을 파악하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고, 이와 더불어 디지털 문화가 꽃핀 오늘날에는 다양한 모양을 뽐내는 숫자들이 화면 위에서 분주하게 춤추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아마도 우리의 몸이 늙어가는 것도 시간의 지나감을 이해시키는 중요한 현상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건, 빨리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시간의 압박을 받는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세상에는 시간을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끊임없이 반복하여 회귀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상이 있었다. 이런 윤회사상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미래에서 현재를 통해 과거로 흘러가는 직선으로 이해하였다(고백록, 11장). 성경은 역사와 인생에 관해 매우 색다른 시간 개념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란 용량이 정해진 항아리나 호리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역사는 초롱으로 길어온 물을 항아리에 부어 아귀까지 가득 채우면 마감되는 것으로 이해되고(갈 4:4), 인생은 호리병에서 흘러나오던 기름이 마지막 방울을 떨어뜨리면 끝나는 것으로 이해된다(딤후 4:6). 다르게 말하면 시간이란 마치 길이가 정해진 양탄자나 달리기 구간(빌 4:16; 딤후 4:7)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이해하건 공통점은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사람은 시간에 압박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왕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이다. 신자는 비록 역사 속에서 시간을 살아도, 구속사 속에서는 영원을 산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간을 살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원을 산다. 신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겉사람은 낡아도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는 말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왕이시고 신자는 영원한 하나님 왕국의 일원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왕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셨던 때가 없이 항상 왕이시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왕국이 없었던 때가 없이 항상 있다는 뜻이다. 에덴에는 하나님의 왕국이 없었다는 이상한 말이 들리지만, 하나님의 왕국이 없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셨던 적이 있다는 말이 되므로, 이것은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주장만큼이나 불경한 생각이다.

우리는 영원하신 왕 앞에서 산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시간은 그다지 의미가 큰 것이 아니다. 영원에 비하면 시간은 물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마른 땅에 떠오르는 먼지 같을 뿐이다(사 40:15). 누군가가 제작한 양탄자처럼 시간은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것이다. 양쪽에 마감 부분이 있는 양탄자처럼 시간은 한정된 것으로 시작과 끝을 가진다. 시간의 양쪽 너머에는 영원이 있다. 영원이 맞닿는 순간 시간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시간은 한정된 것이지만 양탄자의 끝부분을 둘둘 말듯이 하나님에 의해 심지어 단축될 수도 있다(고전 7:29; 참조. 행 5:6). 그러면 시간은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해가 바뀌는 분수령이다. 변화하는 시간을 사는 우리는 불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영원하신 왕 하나님 앞에 서서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누리며 새해를 힘차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