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0년 : 못다 한 이야기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2023년도 11월은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만 60년이 되는 달입니다. 긴 세월이었지만 아주 짧은 세월로 살았습니다. 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고, 산 넘고 물 건너 거친 광야를 거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룹회사 CEO로 재직할 때 분식 회계 문제로 대검중수부의 표적 수사를 받아 억울하고 참을 수 없어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려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아내의 눈물의 기도와 간청이 더해졌습니다. 저희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간섭하지 않으신 것이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살아왔던 60년이,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신길교회(기성)에서 총각 집사로 몇 년 봉사를 거처 42세에 장로 장립을 받았습니다. 시무장로 30년을 봉직한 후 2006년도에 원로장로로 추대되어 은퇴했습니다. 총각 집사 5년은 ‘날라리’ 집사였고 담배 피우고 포커에 빠지고 주말 낚시에 미쳐 주일성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시무장로로 헌신할 초창기까지만 해도 복음적 진리와는 멀게 율법 신앙과 기복신앙에 젖어있었고 교회 봉사 역시 오직 성장과 규모 키우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36세에 청춘과부가 되신 어머니(이병옥 권사)께서는 막내 아들을 위해 교회에서 철야하시고, 새벽기도 후에 심방 가시다가 LG그룹 통근 버스에 치여 일주일 만에 소천하셨습니다. 무의식 상태로 일주일간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였습니다. 당시 김득룡 목사님(어머니께서 3번째 개척한 봉양교회 시무)께서 병문안차 오셨습니다. 당시 목사님께서는 저희 부부에게 여러 위로의 말과 함께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면하셨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첫째는 거룩하고 활기찬 예배, 둘째는 생명을 거는 신앙고백, 셋째는 응답받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도와 제자의 가는 길에 대해서도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때가 저희 부부에게는 기복주의와 율법 신앙으로부터 탈피하여 건강한 신앙으로 전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경련에서 상무이사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전경련 토요 채플과 경제인 조찬 기도회를 창립하고 복음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초청 인사도 복음주의적인 연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CBMC, 국회 조찬회, 기독 장교회, 애증회(법조인회) 5개 단체가 합동으로 매년 개최하는 연말 크리스마스 행사도 연례행사 위주에서 경제인 복음화 운동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재계 60대 그룹사 CEO를 중심으로 기도회를 집중하되 각 그룹 내 독실한 신앙인을 찾아내서 CEO와 묶음 작업을 했습니다.
특히 세계 각국과 연결된 경제협력위원회를 개최할 때는 영문으로 된 CCC 4영리를 상대국 사무총장과 실무 그룹에게 전했습니다. 고합그룹 부회장으로 재직 때는 해외에 파견되는 직원들에게 임시 선교사 파견증을 주었고, 해외 지사 시찰 순방 때는 현지에서 기도회를 갖고 격려도 하고 격려금도 주었습니다. 고합그룹을 떠나 한국 중견기업연합회 3대 회장으로 부임할 때는 회장단을 대폭 개편하였습니다. 부회장단을 25명으로 확대하고, 그중 15명을 교회 장로나 중직자 회사 CEO들을 보임시켰습니다. 경제계 복음화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저는 DJ 정부로부터 공정 거래 향상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습니다. 중기련 내에 부당내부거래 신고센터를 설립, 재벌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신고받아 조사했고, 아주 악질적인 경우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전경련 출신이 발의한 역설적 진실이었습니다. 경제계 복음화는 지속됐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경련이나 중견련 회원사는 세계 각국 187개국 200여 이상의 오지에 지사 설치나 세일즈맨을 상주시켜 ‘Made in Korea 제품’을 판매합니다. 이들은 장사꾼이지만 외교관들입니다. Korea를 선양합니다. 이들에게 국내 소식을 라이브로 중계하고 특히 설교를 현지에서 듣고 예수를 영접하게 함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는 공산권 국가나 동유럽에도 선교해야 할 당위가 절감됐고, 오지에 나가 생명 걸고 복음 전하는 선교사들에게도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9월 워싱턴 소재 World Space(Noha Samara회장)로부터 위성 채널 4개를 임대계약 체결하고 우선 2개를 1년간 시험방송을 했습니다. WS사는 위성 20여 개를 우주 공간에 쏘아 올려놓고 임대를 전업으로 하는 글로벌 회사입니다. 최소형 수신기를 제작, 채널 304. 305를 통해 찬양과 설교를 송출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 김장환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설교와 찬양대 찬양을 연동시켜 세계 각국 오지에서도 듣고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본격적 사역 전개를 앞두고 제가 큰 시련에 봉착해서 그 소프트웨어를 CTS에 넘겼습니다.
고려대학을 민족 복음화 모델대학으로 진행했던 과제는 미완의 장으로 덮여있습니다. 민족 뿌리 대학이요, 4. 19혁명 발진 대학이기에 매 토요일 오후에는 4영리 책자를 들고 고대 캠퍼스엘 갔습니다. 보람이었습니다. 이는 CCC 대표 김준곤 목사님의 아이디어로 크리스천 엠버시 대표인 저와 이사진들이 앞장섰습니다.
저는 2006년에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현역에서 약 40년 일했던 시기를 포함 결혼 60년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아내의 헌신 없이는 오늘이 존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내 역시 모태 신앙인이며 신실하고 거짓말을 못 했습니다. 나는 사회생활 하는 동안 오염이 많이 되어 가정 평화라는 핑계로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일정 부문 용서를 비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5월 아내와 나는 대장암 2기와 3기 판정을 동시에 받고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수술받았습니다. 항암 주사는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야속하기도 했고 원망도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으로 견뎌냈고 기적으로 극복됐습니다. 병원에서 부부가 서로 환자이자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기도와 말씀을 깊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14년 6월에 저희 부부는 완쾌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빈털터리에게 시집와서 호된 시집살이는 물론 일곱 번 사글세, 전세로 전전하다가 작은 집을 마련했고, 60년간 순종과 헌신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아내에게 보상의 기회를 생각해 봅니다. 이번 결혼 60주년 기념일에 좋은 구두를 사서 사랑한다는 편지와 함께 선물했습니다.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내 자존심만 세웠던 지난날들이 쑥스러웠습니다. 결혼 60주년 축하를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차남 아들네 집에 가서 가족 단위 축하를 받았고, 서울에서는 장남(SC제일은행 부행장)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특히 저희 부부가 출석하는 세움교회(합신)에서 정요석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 교우들께서 “깜짝 축하 이벤트”를 해주셨습니다. 마중물 중창단의 “모든 게 하나님 은혜였소”라는 찬양을 부를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우리나라와 사회 그리고 세움공동체에 사랑의 빚진 자”라고 인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불초 저희 부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감당하시고 “다 이루었다”는 부활 승리(종말 완성)의 결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앞으로 더 겸손히 걸어가기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