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름다운 마무리_안두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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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안두익 목사(동성교회, 총동문회장)

 

몇 해 전 EBS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한국산 호랑이가 시베리아에 서식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제작팀이 무려 6개월간 야영을 하며 호랑이를 촬영하면서 그 제작진의 한 PD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노련한 사냥꾼은 발자국 하나만을 보고도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발자국을 보고 그 자국을 남긴 사람이나 동물의 특성을 금방 압니다. 사람의 경우는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 아이인지 혹은 어른인지를 아는 것은 기본이고, 이 사람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몸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빨리 걸어갔는지, 언제 그 자리를 지나갔는지까지도 안다고 합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발자국 하나만 남겨도 이렇게 전문가는 판단합니다.

이 한 해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딤후 4장에 보면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노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내게 속히 오라”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보면 자신의 정리된 삶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봅니다. 너무 진실하고 가식이 없으며 솔직한 이야기들입니다. 그의 인생의 발자국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남기고 간 발자국들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화려한 발자국을 찍은 사람들, 인간의 잣대로 거인이라고 평가된 사람들은 자신의 야망과 권력과 재물과 인기로 열심히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몰려오면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영원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그들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영원한 제국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스스로 세계를 지배하는 거인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거인을 꿈꾸던 그의 몸부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지금은 수많은 여행객의 발에 짓밟히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연말을 통해 바울의 모습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자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오면서 부딪히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나온 과거’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시간이 현재와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거나 기억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나온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라는 말처럼 사용됩니다. 다른 하나는 ‘지나간 과거’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시간이 완전히 끝나고 현재와 관련이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지나간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처럼 사용됩니다.

화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과거 때문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지나온 과거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지나간 과거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정말 오랜 세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지나온 과거로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노년이 되도록 정리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화해하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화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아픔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과거가 문제입니다. 지나온 과거가 우리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로 떠나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지나온 과거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늦었지만, 이 과거 문제를 잘 정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마무리를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과거를 잘 정리하게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서로 이해하게 해주시고, 용서하게 해주시고, 그리고 화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삶의 발자국의 흔적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부끄러움에 떨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녀 삼으신 그 십자가 사랑 앞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