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노 이야기 19] 사건과 함께: 위그노 첫 교회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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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함께: 위그노 첫 교회의 순교

14명 순교자 명단(왼쪽 판/오른쪽 판)

 

깔방(Calvin)의 등장에 힘입어 위그노 운동은 프랑스 전역에서 파죽지세로 퍼져나갔다. 신교 신자들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교회가 필요하였다. 신교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듣고 성찬을 행하며 교제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1546년 9월 8일 주일, 이런 목마름 가운데 파리에서 동쪽으로 50킬로 정도 떨어진 “모”(Meaux)라는 도시에 프랑스의 첫 번째 위그노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곳은 20년 전 루터의 사상을 따라 개혁을 시도한 적이 있는 도시였다.

직모업자 에띠엔느 멍장이 자기의 집을 예배처소로 내놓았다. 예배 현장에는 남자 47명과 여자 17명 도합 64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조만간 다른 이들도 참석할 상황이었다. 모 교회에 모인 신자들은 개혁파 신학을 따라 성경을 읽고, 형식을 갖추어 기도하고, 영혼을 울리는 시편찬송을 불렀다. 그들은 깔방이 목회하던 스트라스부르의 난민교회의 예배방식을 모범으로 삼았다. 이것은 그들 가운데 몇 명이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하여 배워온 것이다.

그런데 위그노들이 예배하기 위해 모인다는 정보가 당국자들의 귀로 흘러들어갔다. 모의 지도급 인사들은 회의 끝에 위그노들이 예배하는 현장을 급습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두 패로 나누어 두 길로 습격을 시도하였다. 습격을 받을 당시, 성경을 연속으로 낭독하던 삐에르 르끌레르 목사가 고린도전서 가운데 한 구절을 읽고 있었다. 르끌레르 목사는 체포자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지요.” 그리고는 신자들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으로 갑시다.” 목사와 신자들은 저항 없이 체포당하였다. 신자들은 체포당하는 시점에 시편 79편을 불렀다. 죄목은 스트라스부르 방식을 따라 빵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을 집행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신자들에게 포도주를 주지 않는 가톨릭의 성찬 방식을 여긴 셈이었다.

예배 참석자 가운데 57명이 구금되었는데 재판을 받으러 파리로 이송되었다. 1546년 10월 4일, 그들은 파리 의회 법정으로부터 최종 판결을 받았다. 14명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고, 4명은 추방, 4명은 방면, 나머지는 “공개 자백” 같은 다양한 형벌을 받았다. 사형언도를 받은 14명은 나머지 사람들과 격리 수용되었을 뿐 아니라 각각 다른 수도원에 수감되어 신교 신앙을 철회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회유를 받았다. 10월 5일, 14명이 다시 모로 이송되는 길에 소르본 대학의 가톨릭 신학박사 2명이 동행하면서 신앙철회를 설득하고 종용하였다. 이때 르끌레르 목사는 두 사람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외쳤다.

10월 8일, 모든 회유 시도가 소용이 없게 되자 시 정부는 신앙을 변절시킬 목적으로 14명에게 극심한 고문을 가하였지만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헛수고로 그쳤다. 그들의 신앙은 그처럼 견고한 것이었다. 14명은 극한 고문을 당한 끝에, 모의 야외 시장 한복판에서, 다름 아니라 에띠엔 멍장의 집 근처에서 산 채로 화형되었다. 멍장은 화형을 당하기에 앞서 혀를 잘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세 번 큰 소리로 외쳤다. 재산은 몰수당하고 집은 파괴되었다. 집터는 동정녀 마리아를 기념하는 소성당으로 대치되었다. 프랑스 최초의 위그노 교회에서 14명이 사형당한 이 사건은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걸친 신교의 순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지금도 모 교회에 가면 예배당 뒤쪽 벽면에 순교자 14명의 명단이 붙어있다. 1985년에 모 시는 멍장의 집이 있던 야외 시장 앞 건물(73 Rue du Commandant Berge)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담은 기념패를 설치하였다.

“여기에 프랑스의 첫 번째 개혁교회가 설립된 에띠엔느 멍장의 집이 있었다. 예배 중에 체포된 14명의 개혁파 신자들이 1546년 10월 4일 파리 의회가 내린 법령에 따라 1546년 10월 8일 이 집 앞에서 화형당하였다. 1985년 모 시의 기념패 헌정”.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대표 : 조병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