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은혜(창세기 15:1-6)
권창기 목사(초대교회, 중서울노회)
후두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예수를 믿고 기적적으로 병이 나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교회 출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이 사람의 믿음이 원래 가짜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참 믿음을 허락하셨다면 언제 어떻게 일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 믿음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다가 빼앗는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는 남의 구원에 대하여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전에 예수님을 믿었는데 지금은 교회를 나오지 않는 분이 주변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끊지 말고 계속하면 분명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에 다시금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6절 말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을 완성시키신다”라는 주제로 정하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두려운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서 이제 믿음이 무엇인지 나름 감을 잡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소돔의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이긴 모든 전리품을 기쁨으로 내어놓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립니다. 초보 신앙인의 수준으로는 대단한 실천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결단을 내렸는데, 하나님은 별다른 반응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서운해서 시험에 들만합니다. 전날의 전쟁은 자신이 기습전을 펼쳤기 때문에 소돔 왕이 얼떨결에 당했지만, 이제 소돔 왕은 분명 칼을 갈면서 복수할 기회를 찾을 것입니다.
아브람 마음에 후회와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내가 뭔가 너무 앞서갔나?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차라리 그 전리품으로 용병을 모집했다면 소돔 왕의 공격을 염려하지 않았을 것인데, 괜히 믿음 있는 척했나?” 머리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판단을 했지만, 그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에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내가 무슨 대단한 믿음이 있다고…” 믿음으로 했던 행동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것입니다.
아브람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요?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즉 감정적으로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주제의 상황입니다.
2. 연약한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완성시키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연약한 믿음입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아직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약한 믿음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를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신과 두려움과 아픔과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 먹구름이 찾아오면 이 상처가 빌미가 되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끊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고, 심지어 죄를 계속 범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충분히 의지하지 못하는 수준인데도,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귀하게 보시고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를 붙드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이 연약했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물증을 요구하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믿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믿는 것이지, 어떤 눈에 보이는 물증이 있어야 믿는 것은 아니죠. 하나님께 물증을 요구했다는 것은 아브람의 믿음이 아직 연약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혼 전 남녀 간의 연애 시절이란 서로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는 시간입니다. “이 사람 믿을만하구나”하고 상대방이 믿도록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상처가 많은 사람의 경우 마음을 잘 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상대방에게 증거를 요구합니다. 심지어 이미 결혼까지 했는데도 과거에 버림을 받은 상처가 남아 또 버림받을까 두려워하고,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부족하다 생각하면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계속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바로 이런 처지가 아닐까요? 아브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소돔 왕과의 전쟁을 감당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염려와 불신이 자리를 잡는 것이죠. 물론 머리로는 하나님이 좋은 분이란 것을 알면서도 온전히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람이 가진 이런 겨자씨보다도 못한 믿음을 하늘의 의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주제를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을 완성시키신다”라고 정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오직 파격적인 은혜로 믿음을 완성시키신다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을 어떻게 완성하십니까? 한 마디로 은혜죠? 하나님은 믿음이 부족한 아브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그 증거가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브람에게 짐승을 죽여 쪼개라고 지시하시고, 그 사이로 하나님의 불이 지나가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약속을 아브람이 지키지 않는다면 이런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증거를 보여주시니, 영적 감각이 떨어지는 아브람이었지만 이 부분에 가서는 필이 콱 꽂혔을 것입니다. 참 은혜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이제 이런 사실을 우리 입장에서 묵상해보십시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약속하시고, 이것도 부족해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시고, 심지어 창조주가 피조물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니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말 파격이라면 이보다 더한 파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바퀴벌레랑 약속합니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가 천장에 붙어 있다가 잠자는 내 이불 위로 뚝 떨어져 내 얼굴에 기어 올라온다고 해도 내가 너를 용서하마” 그렇게 약속합니까? “바퀴벌레를 밟아 죽이는 대신에 차라리 내 아들을 죽이고 너를 살려두마!”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퀴벌레보다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의 종된 우리가 무엇이 좋다고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해주시고 심지어 이런 파격적인 증거까지 보여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마치 어리석은 양처럼 각기 제 갈 길로 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와 연약함을 대신하여 그 아들 성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그 연약한 믿음을 하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믿음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람처럼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 날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야 합니다. 내 영혼의 치유를 통해 마음의 천국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 복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치유와 축복의 삶이 풍성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