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 서라’
변혜숙 사모(보개중앙교회)
저는 성숙하시고 귀하신 목사님들, 사모님들과의 모임을 참 좋아합니다. 가슴 깊숙한 곳의 코드가 맞기에 얘기가 통하고 그분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허리 협착증이 심해서 많이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증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어 다른 일행에게 불편을 줄까 싶어, 어디 가는 것이 마음으로나 육적으로 주저되는 형편이어서 본 대회 참여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참에 남편 목사님이 찬양 인도를 맡았다며 함께 가기를 원하기에 짐이 아닌 도움의 존재가 되고 싶어 같이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하신 주의 종 목사님들 사모님들이 함께 찬양을 통해 주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며 준비하신 말씀들이 더욱 능력으로 선포되어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대회가 진행되며 순서마다 은혜였는데, 지면상 제가 크게 받은 한두 개만 나누고자 합니다.
첫날 저녁 식사 후 찬양의 자리는, 정말 신실하고 진실하신 분들과 함께 맘을 합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고 또한 떨리는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은혜 충만함에 젖게 되었습니다. 역시 홀로 하는 찬양과 다르게 충성된 용사들과 합심의 찬양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요!
둘째 날 아침 장상래 목사님이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전하여 주신 말씀에서 왜 예배가 소중한가를 다시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는 사람을 찾으시는데, 하나님이 안 찾으시는 교회, 목사, 성도는 무슨 의미가 있나? 예배를 통해 신앙이 성숙해지는데, 사람들이 예배를 얼마나 예배되게 드리며 예배에 얼마나 인생을 거는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예배에 달렸기에, 구약 시대에 예배와 제사와 절기를 세운 선한 왕들은 아름다운 인생의 결말은 보였고, 반면에 악한 왕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예배와 제사와 절기를 폐하다가 인생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던가!
이 말씀을 통해 저는 예배를 갈망하고 사모함으로 진정한 자세로 드려야 됨을 깨닫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설교 본문이 계속 묵상되어지며 혹시라도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성도들에게 예배를 다시 가르치며 실행시키며, 수요 예배를 드린 오늘도 저를 살피고 연구하는 말씀이 되고 더욱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드린 목사님들의 노회별 특송은 정말 천군 천사들의 찬양이었고 강하고 견고하며 신실한 믿음의 고백들인 것 같아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전도세미나를 통해 그룹으로 전도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을 새롭게 배웠고, 역시 전도의 영성은 인내와 헌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부족한 오래 참음.
그 동안 육신의 통증으로 마음까지 위축되고 웅크렸었는데 본 대회를 통해 영육으로 쉼과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들 사모님들과 교제하며 나눈 사랑 때문에 더욱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맘이 두터워진 것 같아 행복하고 자신에게도 자신감도 생깁니다. 저는 그저 참여함으로 천국잔치를 누렸지만 가나의 혼인잔치를 준비한 보이지 않은 순종의 종들께는 주님이 더욱 신령한 비밀들을 알려주셨을 것 같아 저도 늘 묵묵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준비하는 순종의 종이 되고픈 소망도 본 대회를 통해 갖게 되었습니다. 낮은 자를 말씀과 찬양과 사랑의 섬김으로 주안에 세워주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감사하며 대회를 섬겨주신 목사님들께도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도 은혜를 사모하기에 기다려집니다. 다시 뵐 때까지 우리 모두 주안에서 파이팅 !! 입니다.
‘섭리’ ‘주님께 붙들린 삶’ ‘우정’…
신락규 목사(하늘소망교회)
“목사님도 시골에서 목회하고 계시니 참여해 보시죠?” 멘토로 섬겨주시는 선배 목사님의 권유로 나에겐 이름도 생소한 교단 농어촌 목회자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가 시골교회 목사인가요?” 반문하며 눈을 들어보니 목양실 창문으로 푸르른 논이 보이고 숲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군말 없이 주중 사역들을 조정하고 바로 신청했다. 주일 사역을 마치고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내와 짐을 꾸려 보령으로 향했고, 신입(?)답게 눈치를 살피며 뒷자리에 앉아 모든 집회 일정에도 참여했다.
농어촌 교회만의 특유의 정서가 낯설지 않고 편안함이 있었다. 찬양도 부르고 말씀도 들으니 마음 안에 잔잔하고 따뜻한 은혜가 차올랐고 생각이 많아졌다. 쉽지 않았을 농어촌 교회를 섬기며 오롯이 한길을 묵묵히 걸으며 여기까지 오셨을 선배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의 찬송과 고백에서 내공이 느껴졌고, 집회에 참여하시는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며 작은(?) 거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존재의 울림이지 않았을까… 성악을 전공한 아내도 감동이 있었는지 특송으로 섬기고 싶어했다.
나 자신과 아내와 목회를 잠시 반추해 보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시려고 이곳에 부르셨나보다. 나의 목회 경험이 더해 갈수록 작은교회에 자신의 전 삶을 바쳐 충성되이 살아온 교단의 어른 목사님들이 많이 존경스럽다. 그런 귀한 분들과의 만남은 고단한 목회여정에 큰 힘이 된다. 농어촌 목회자 대회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성숙한 어른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참 많이 계셨다. 교단 농어촌 목회자 대회에 참여하며 세 가지가 마음속에 계속 묵상이 되었다. 섭리, 주님께 붙들린 삶, 우정….
내가 이해한바 섭리란 하나님의 뜻대로 천지만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 섭리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이다. 시간이 흐르고 일의 사태들이 더 전개되어야만 그때 그 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교회로 부르심을 받고 기꺼이 순종하며 섬기는 어른 목회자 부부를 뵈며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붙들며 여기까지 오셨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도전이 되었다.
주님께 붙들린 삶이란 주님이 하고 싶으신 것이 내가 행하고 싶은 바가 되는, 주님과 나 사이의 일치를 의미한다. 주님과 우리가 한 방향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감을 의미할 텐데 주님께 붙들린 삶이 아니었다면 이분들처럼 인생의 방향을 선회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정… 나는 최근에도 어려운 목회 상황에 놓인 목사님과 교제하며 안타까운 마음에 함께 울 수 밖에 없었는데 이곳에 참여한 한 목사님에게서 우정어린 설레발(?)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난 한 목사님은 노회 소속의 시골교회를 섬기는 친구 목사님이 최근 어려운 상황으로 몸도 마음도 아파할 때 밤새워 함께 이야기도 들어주며 씨름하였다고 하며 동료에 대한 걱정이 끊임이 없었다. 그의 애끓는 마음을 보며 눈물이 나는 건 왜인지.
나는 농어촌 목회자 대회장을 떠나며 아내와 함께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할 수 없었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농어촌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돌보며 살아가는 선배 목사님과 사모님들을 위해 하늘의 위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했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대했다.
‘하나님의 칭찬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사람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