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 북핵을 이해하면 북한의 앞날이 보인다_유대열 목사

0
101

북핵을 이해하면 북한의 앞날이 보인다

유대열 목사(본향교회, 강원 북한교회재건위 실행위원)

 

2017년 6차 핵실험 후 북한은 수소탄실험에서 성공하였다고 공언했습니다.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주장이 빈말이 아니라고 시인하였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6번째로 수소탄 보유국가가 된 것입니다. 북한이 이런 핵 위력을 가졌다는 것은 남한과 세계 평화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고 위협입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고, 지금도 독재정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서슴없이 빼앗아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북한군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고 ‘김정은 사설가병’인 것처럼 북한의 핵도 ‘김정은 사설무기’라는 것이 북한 핵의 본질입니다. 북한이 핵연구개발을 시작한 것은 6.25 직후인 1955년부터입니다. 그때 ‘원자 및 핵물리학 연구소’ 설립을 결정하고 소련에 핵과학자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6.25 직후는 김일성에게 큰 위기의 때였는데, 소련과 중국 모두가 김일성이 정권에서 물러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 위기에서 살아나기 위해 김일성이 내놓은 사상이 바로 ‘주체사상’이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같은 이념의 나라들이 자기를 제거하려 했기에 ‘자기 나라의 운명의 주인은 그 나라 인민이다!’는 주체사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핵에 욕심을 품은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다른 사상’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그 대국들의 힘으로부터 지켜주는 무기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 바로 핵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생전에 제일 미워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소련의 흐루쇼프입니다. 이 사람은 스탈린 사후 소련공산당의 서기장이 되어 집권 전 기간 스탈린 개인숭배와 독재 반대운동을 벌렸습니다. 1962년 모스크바의 레닌묘에 함께 안치되어 있던 스탈린의 시신을 꺼내 화장까지 한 사람이 흐루쇼프입니다. 실제로 흐루쇼프 개인숭배와 독재 반대운동에 편승한 북한의 최창익(당시 국가검열상) 일파는 독재자 김일성 암살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1956년 8월 김일성이 소련방문에서 돌아올 때 순안비행장에서 고사포로 김일성의 비행기를 격추하여 사실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순안비행장이 아니라 미림비행장으로 방향을 돌림으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소련에 의해 세워지고 소련에 의해 유지되던 김일성 권력을 소련이 제거하려 했던 것은 김일성에게 미국이나 남한으로부터의 위협보다 더 실제적이고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의 핵에 대한 욕심은 이와 같은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갖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의 독재기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을 알고 있던 소련과 중국은 북한의 핵기술 협조 요청을 반대하여 왔습니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김일성은 마오쩌둥에게 서신을 보내, 혈맹으로 핵기술에서도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마오쩌둥은 거절하였습니다. ‘북한과 같이 작은 나라에는 핵무기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핵을 원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영구히 지키기 위한 것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북한 핵을 위해 치뤄진 대가는 북한 핵이 김씨 일가의 영구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보여줍니다. 북한 과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최고의 과학자는 리승기 원사(북한의 최고 학위)입니다. 그는 해방 후 서울대 공대학장까지 지낸 학자인데 6.25때 월북하였습니다. 1960년에 비날론(화학섬유)을 성공하고는 돌연 언론매체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따금씩 국가로부터 높은 수훈을 받았다는 발표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리승기 원사는 북한 핵연구와 개발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일정수준에 도달한 때가 1980년대 말쯤입니다. 그때부터 미국의 정찰위성에 북한 영변 주변의 백사장에서 분화구 같은 구덩이들이 포착되었습니다. 그 구덩이들은 다름 아닌 ‘핵기폭장치시험’이 만들어낸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제1차 핵시험이 2006년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북한에서는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6.25로 인한 북한의 사망자 수도 200만이 못됩니다. 어떻게 그 작은 나라에서 300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데, 아랑곳 하지 않고 핵무기를 만든단 말입니까?! 북한 핵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김정은의 영원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한 ‘김정은 사설 무기’라는 증거입니다.

‘고난의 행군’(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던 때)이 한창이던 때인, 1996년 12월 7일 김정일은 50주년을 맞은 모교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낸 연설을 했습니다. ‘경제사업에 말려들면 당사업도 못하고, 군대사업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김일성의 유훈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사업을 하지 않는다…’ 여기 ‘당사업’과 ‘군대사업’이라는 것은 김정일 권력을 견고히 하고 지키는 일을 말하고, ‘경제사업’은 백성을 먹이고 살리는 일을 말합니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원래부터 백성의 생명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극악무도한 독재살인마일 뿐입니다.

온 백성을 향하여 자신을 신격화 해 놓은 김정은이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통일을 바라는 국민을 절망케 하였습니다. 북한동포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던 남한교회의 성도들에게서 북한선교의 소망과 비전을 빼앗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입니까? 요새는 교회들에서 북한동포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권자라는 진리를 진실로 믿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되어가는 일을 보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실망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권자라는 믿음을 가지면 북한이 열린다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소망을 가진 자는 기도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