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3)
겨자씨 출간
박윤선의 기도에 대해서는 내가 언제 한번 글도 썼습니다. 일단 우리가 산기도 할 적인데, 대개 모란봉도 가고 용문산에도 가고 황해도 구월산에도 갔습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면 습기가 올라와서 못 견딥니다. 그래서 유단이라는 것을 가져갑니다. 천에다 물들인 건데, 지금이야 비닐이 있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단을 한 조각 가져가서 앉아 있으면 습기가 안 올라옵니다. 그리고 미숫가루 하고 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냥 자기의 힘대로 시간 있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사십일 기도도 하고 또 수 십일씩 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신성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숭실대학 때입니다. 나는 숭실대학8회 졸업인데 박윤선은 9회 졸업입니다. 9회 졸업생이 여덟 명인데, 그 중에 재미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박윤선이를 귀쪽잡이라고 불렀습니다. 박윤선이 친한 사람의 귀를 잘 잡습니다.
나이로는 내가 제일 어립니다. 제일 나이 많은 게 진홍이고(김진홍) 그 다음에 윤선입니다. 평양에 있을 적에 나하고 진홍이하고 한 방에 있었습니다. 방이 아주 작았습니다. 진흥이는 공부벌레입니다. 아침마다 예배를 보고 오늘은 진흥이가 인도하고 내일은 내가 인도하고 하면서 성경을 보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진흥이도 “야, 이것 우리끼리만 하면 안 되겠다. 우리가 글로 쓰자” 하는 겁니다. 그래서 글로 써서 친구들한테 서로 보내려고 하는데 그것을 일일이 어떻게 손으로 쓰겠습니까? 그래서 등사 하자고 해서 등사해서 나온 것이 “겨자씨”입니다.
진흥이가 글씨를 잘 썼습니다. 6년을 했는데, 3년 짼지 6년 째인지 기억이 잘 안 나나 아무튼 어디 다녀왔는데 우리 기숙사 215호실이 형편이 없는 겁니다. 사감 선생한테 물어보니 경찰이 와서 열고 들어가서 이렇게 해왔다는 겁니다. 책이 다 널려져 있고, 또 보니까 경찰이 내일 고등계로 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출판법 위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때 사각모 쓰는 곳이 한국에 보성전문학교하고 연희전문학교하고 우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서울대학이 없을 때고, 세브란스도 아직 전문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사각모는 우리 셋밖에 없는데, 내가 딱 사각모 쓰고 고등계에 들어갔습니다.
가서는 왜 불렀느냐고 물었더니 대답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출판법을 모르느냐, 몇 년 동안 허가 없이 출판했으니 5년 이상의 징역과 얼마의 벌금을 내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내가 이것을 책사에 내다 팔았냐고, 그냥 우리 친구끼리 편지를 나누는 건데 10장 20장 50장 100장 200장을 쓰려니까 어려워서 등사하는 건데 무슨 출판법 위반이냐고 했습니다. 내가 웃으면서 딱 버텼습니다. 그때 난 참 철이 없었지, 어떻게 일본 경찰에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한참 듣더니 우리가 의논해 볼 테니 갔다가 다시 부를 때 오라고 하는 겁니다. 나중에 불러서 가니까, 모르고 했다니까 이번에는 용서하는데, 계속 하려면 총독부에 허락을 맡으라는 겁니다. 원고를 다 작성해서 총독부에 보내면 총독부에서 원고에다 시뻘건 검열 도장을 찍는데 그것을 받으라는 겁니다.
좌우간 진흥이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내 글씨는 정말 초등학교 1학년 아이 글씨 만합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쓰겠다고 하고서 몇 달을 했습니다. 내 우스운 글씨로 몇 달을 하고, 나중에 윤선이가 가담해서는 등사하지 말고 활판해서 출판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출판은 적어도 한 오륙십 만원 듭니다. 윤선이가 모금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남현교회에 있는 어떤 집사를 같이 찾아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믿음도 좋고 전부터 잘 알기 때문에 같이 가서 윤선이가 출판을 하려는데 돈을 좀 구해야겠다고 하니까, 그 집사가 돈 준비를 못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윤선이가 돌아가자고 해서 왔더니, 윤선이가 오늘 대단히 실례했다고, 기도 안 하고 간 것이 우리 잘못이지 집사님 잘못은 아무 것도 없다고 써서 편지를 한 겁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을 계속하다가 내가 중국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출판한 지 6년 정도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 영음사의 허락을 얻어 도서 <박윤선과의 만남>의 내용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