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교회됨의 회복을 위하여
나종천 목사(한사랑교회, 본보 논설위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2023년 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종교인을 포함한 우리 국민 4명 중 3명, 74%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2020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10% 정도 낮아졌다. ‘기독교 목사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질문에 74%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신교 그룹 안에서도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비율이 37%였고, 목사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20.7%였다. 한국교회나 목사, 교인들에 대한 부정 평가가 높았다. 신뢰하지 못한 이유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의 문은 닫힐 수밖에 없고, 신대원 지원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네 교회 중 세 교회가 쇠퇴하고 20퍼센트가 죽어 가는(문 닫는) 교회이며 시간적인 차이는 있지만 40%가 서서히 죽어가고(문 닫고) 있다.
이런 충격적인 현실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우리 교회는 그래도 좀 버틸 수 있어 하면서 방관만하고 있어야 되는가? 노회는 지교회의 책임이니까 당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총회는 우리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노회나 지교회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가 총신에서 좀 바르게 해 보겠다고 나오면서 바른교회를 지향한 것은 개교회 이기주의를 넘어 공교회를 회복하기 위함이었고, 고 박윤선 목사께서도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우리가 나왔지만 반드시 합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우리 교단이 조금이나마 한국교회에서 존중을 받은 것은 교회의 숫자가 많다든지, 실력이 탁월해서는 아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개혁교회의 교리와 전통을 존중하고 순종하는데 있었다. 지난 총회에서 부담되었던 지역노회에 대한 안건도, 우리 교단이 개교회주의, 지역이기주위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측면에서 우리끼리라는 부패성을 억제하고,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해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지역노회를 힘겹게 이루어 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하려고 합신이란 교단이 세워졌는가하는 아픈 소리가 들린다. 예컨대 노회모임을 보자. 오후 시간이 되면 참석회원 20%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노회가 ‘재미없다. 지루하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노회를 재미있게 할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회는 재미를 위해 모인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아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거룩한 공교회다. ‘지루하다, 재미없다’는 이런 단어가 얼마나 세속적이며 비성경적인가를 알아야 한다. 노회에서 진행하는 사역들이 나와 우리교회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지교회의 일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고, 형제들의 일이며 나의 일이다. 그렇다면 기도하고 함께 주님의 뜻을 찾아 그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이 일처럼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나와 우리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한다. 주님의 교회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악한 일이다.
교회가 안팎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때, 지금 교회가 시급히 우선할 것은 거룩한 공교회 회복, 교회의 연합이다. 최근 신자들이 “하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라든지, “예수는 좋지만 신자는 싫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전적으로 부패한 교회, 바람직하지 못한 신자, 목사들에게도 있지만, 비록 교회나 신자가 부패했다고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교회가 신자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교회가 신자를 ‘낳기’ 때문이다. 신자는 “교회를 통하여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을 거꾸로 하자면 신자는 교회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 또한 교회가 신자를 ‘양육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의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교회를 통해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이 교회에 연합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벨직신앙고백서도 “우리는 이 모임의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와 형편이 어떻든지 간에 아무도 여기에서 물러나 홀로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반드시 참교회에 연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연합을 위해 벨직신앙고백 28조에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참 교회의 가르침과 훈련에 복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목에 매고 하나님께서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는 일에 봉사해야 한다.” 교회에 연합을 위해 반드시 “겸손”의 덕목 있어야 한다. “나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홀로 있겠다, 나는 교회와 연합하지 않고 우리교회만 홀로 있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꺾지 않는 완악함이다. 개인주의 개교회주의의 완악함을 꺾고 주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연합을 위해 나의 완악함을 꺾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따라 순종하는 것이 참 교회됨의 모습이다.
그리고 신앙고백서가 그와 함께 말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같은 몸의 구성원으로 자신들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형제들과 자매들의 양육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 연합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가 공동체로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서도록 지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독립된 개인들로 지으시지 않으시고, ‘무리’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연합한다는 것이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알고 고백하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 교회를 넘어 지교회에 ‘봉사하는 직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물질이든 사역이든 정말 마음을 다해 함께하는 것이 교회연합의 진정한 모습이다. 교회가 내외부적으로 힘든 이때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됨을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