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너무 아픈 사랑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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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가수 김광석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노래했다. 진정한 사랑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아파도 조금만 아파야 한다는 말일까? 오히려 형식적 사랑엔 아픔이 없지만 진정한 사랑엔 필연적으로 아픔이 뒤따라 올 것 같은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혹자들은 너무 아픈 것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통해서 얻었던 유, 무형의 유익들을 그 사랑의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자 그 미련을 잊지 못해 마음 아파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론’을 예로 들곤 한다.

이 설명을 들으면 한편 이기적 사랑도 ‘아픔이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 아픔의 이유가 돌아올 내 몫의 사라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아픔 자체 때문에 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은 아프다. 사랑하는 상대의 고통의 강도만큼 내 마음도 아픈 것이다. 어쩌면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보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자신이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삼하 18:28~33에 보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 반역하다 요압 장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이렇게 통곡한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이 말은 결코 왕의 제스처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아들의 죽음을 도무지 지켜볼 수가 없어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낫다는 절규이다. 비록 자신을 제거하려는 반역자였음에도 아버지에게 아들의 죽음은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더 나은 잔혹한 아픔이었다. 이를 보고 누가 아들 압살롬보다 아버지 다윗이 덜 고통스러웠다 하겠는가?

몇 년 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에 대해 설교하고 예배를 마친 후,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어린 손주가 불쑥 “하나님은 왜 자신이 직접 안 죽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나요”라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질문에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아 잠시 당황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주는 것과 내가 직접 못 박히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는 그냥 안다. 사랑하는 자식이 당하는 고통은 내가 직접 당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크고 아프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아들의 입에서 나온 성자의 이 절규는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게 더 낫다는 다윗의 심정보다 성부께는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오래전, 갓 돌이 지난 갓난쟁이 어린 딸이 가성콜레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손목에서 혈관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마에 주사바늘을 꽂아야 했다. 간호사도 당황했던지, 여러 번 이마를 찔렀고, 그때마다 어린 딸은 경기를 하며 병원이 떠나갈 정도로 울어댔다. 난 그때, 차마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어 바깥 화장실로 나가 양쪽 귀를 막고, 한참 동안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게 자녀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한 마음이다. 사랑하는 자의 고통이기에 더 아픈 것이다.

우리는 다시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일을 기념하는 계절을 맞았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보다 그 아들을 지켜봤던 아버지 하나님께는 훨씬 더 잔인한 사건이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거나 아프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아픔 없는 사랑은 가짜이다. 아픔과 사랑은 정비례한다. 부모에게 자식은 아픔과 사랑의 결정판이다.

모리아 산에서 “불과 나무는 여기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는 어린 아들 이삭의 가혹한 질문을 들은 아버지 아브라함. 그는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는 아들 예수님의 신음을 들었던 갈보리 산의 아버지 하나님이셨다.

어린 이삭과 아브라함이 하나였던 것처럼, 십자가 위의 예수님과 십자가 아래 하나님도 둘이 아니라 한 분이셨다. 모든 아픔이 사랑은 아니겠지만 모든 사랑은 아프다. 사랑하는 만큼 더 아프다. 갈보리 산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요, 최고의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