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코로나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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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서상 감염병 시대가 서서히 물러가는 듯이 느껴진다. 확진자가 충분수를 넘기면서 그렇게 세차게 몰아치던 규제도 풀리고 사회는 급속히 안정감을 되찾아가는 듯한 인상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때쯤 감염병 기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염병 시대가 그렇게 나쁘기만 했던 것일까? 감염병 기간을 썽둥 잘라내고 이전과 지금을 조금치의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이어놓고 싶어 한다면 너무 섣부른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감염병 기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과거보다 지금쯤 더 큰 일을 했을 것이라며, 감염병 때문에 몇 해를 헛되이 보냈다고 말하지 말자.

빗대어 보자면 감염병 기간은 이스라엘의 광야 시대와 비슷하다. 광야 기간이 나쁘기만 했던 것일까? 시각을 달리 해보면, 광야는 은혜의 장소였고 광야 기간은 은혜의 시간이었다. 거기에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고, 홍해가 갈라지는 이적과 마라가 단물로 바뀌는 이적이 있었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이 사건들이 작은 일인가?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를 받았다. 율법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지닌 백성이 되었고, 성막을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혜택을 얻었으며, 제사장 제도를 받아 예배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군대 조직을 받아 국가형성의 준비작업을 다졌다.

감염병 시대는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었을까? 코로나는 신앙 의식 뿐 아니라 신앙생활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보니 신체로는 합석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들과 개별적으로 또는 동시에 여러 명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것은 전도와 선교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고, 여전히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만 새로운 방식의 교제와 연합을 구상해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시대는 역설적이지만 현장 예배에 대한 깊은 목마름을 불러일으켰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강조하느라 몸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동안 도리어 현장 예배의 귀중함과 대면 교제의 소중함이 확인된 셈이다. 문맥은 조금 다르지만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 10:25)는 말씀은 감염병 시대의 신자들에게 가슴이 시리게 다가왔다. 모임은 기독교의 본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모이는 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꾸로 말하자면, 정상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이지 않는 기독교는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그러나 감염병 앞에서 모임이 쉽사리 깨지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모임으로 과시되는 거품 교인을 자랑하지 말고 믿음이 내면화된 실질 신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규모보다 내실이다. 묶음 이전에 낱개가 좋아야 하듯이, 훌륭한 모임을 위해서는 훌륭한 개인이 전제된다. 교회의 모임이 안정되려면 개인의 신앙이 성숙해야 한다. 단체로 신앙을 표현하기 이전에 개별로 신앙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환경에서 잘 모이는 신자보다 나쁜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있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함께 모여 힘차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 이전에 혼자 있을 때 깊은 기도와 뜨거운 찬송이 먼저이다.

감염병 같은 사태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감염병과 꼭 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재난, 전쟁, 박해 등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사태는 예상치 않게 터질 수 있다. 이때 신자는 개별적으로 신앙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가 개별 신앙을 확립하도록 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혼자서 성경을 바르게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혼자서 성경을 제대로 연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종교개혁이 자국어 성경을 신자의 손에 들려주었다면, 감염병 이후 교회는 성경연구를 신자의 손에 쥐어주어야 한다. 성경에 신자의 접근을 차단했던 중세의 오류를 오늘날 성경연구에 신자의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반복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 이후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교회는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신앙생활의 의미를 바꾸고 패턴을 바꾸어놓은 감염병의 교훈을 바탕으로 교회는 부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말자. 교회가 부흥하려면 신자가 먼저 부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