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기는 부활절 설교] 몸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논증 (행 26:1-2, 8-23)_박윤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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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논증 (행 26:1-2, 8-23)

박윤선 목사(1905~1988, 합신 초대총장)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다. 그는 유다에 와서 다스리는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 이제 그의 신앙을 변증하게 되었다. 그의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신자의 부활을 초점으로 한 복음이었다. 그의 부활 논증은 다음과 같다.

 

왜 부활을 못 믿는가 하고 논증함

바울은 말하기를,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하였다(8절). 이 말 중에 “하나님”이란 말은 중요하다. 부활을 성립시키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전능자에게 무슨 불가능이 있겠는가? 처음 창조도 그가 이루시지 않으셨는가? 부활에 대한 모든 난제들은 단 한마디로 해소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육체 부활을 성립시키신다”라는 간단한 대답이다. 빌3:21 참조

 

자기의 입장을 들어 논증함

바울은 자기 자신이 과거에는 복음을 대적하던 원수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온 후부터는 변하여 도리어 복음의 사신이 되었음을 역설하였다. 진리를 대적하던 원흉이 회개하고 그 진리의 종이 된 사실은 그 진리의 절대 신뢰성을 증거한다. 그가 전에 아무리 예수님의 부활을 반대하였을지라도 이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친히 목격하고서는 더 반대할 수 없었다. 그의 개종에는 중대한 객관적 사실들이 관계되어 있다. ①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빛은 동행자들도 보았고, 또 바울이 들은 소리도 그들이 함께 들었으며(행 9:7, 22:9), ② 아나니아가 초자연적 지시에 의하여 바울에게 그의 사명을 알려주었다(행 9:10-19, 22:10-16). 바울은 이렇게 초자연적 사건들로 인하여 완전히 개종되어 부활을 전하게 되었다.

 

예언이 성취된 것을 들어 논증함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언 성취의 사건이라고 강력히 말해 내려가다가 결론하기를,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하였다(27절). 예언 성취의 사건은 절대로 믿을 만하다는 의미로 바울은 이 부분에 많이 강조한다. 6절에는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고 하였고, 22절에는 자기가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다”고 하였다. 예언 성취의 사건은 믿을 만한 진리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다고 할 때에는 말대로 실행된 사건을 믿는다는 것이다.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때에 우리는 그 말씀과 또 그 성취된 사건을 다 믿을 수밖에 없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믿되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강하게 믿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기울어진 신앙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아 손에 수갑을 차고도 계속적으로 증거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의 증거하는 진리가 너무도 참되고 명백하기 때문이었다. 성경66권을 모두 다 암송하였다는 파스칼은 예언 성취의 사건을 믿을 만하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다.
– 박윤선 설교집, 주님을 따르자(영음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