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답
허태성 선교사(일본, 만노그리스도교회 주임)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을 27년에 걸쳐서 썼다고 한다. 역사의 해석에 대한 그의 이론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가끔 내 인생의 역사를 그의 이론에 비추어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것은 환경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도전할 만한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만난 영어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사법고시에 패스하여 입신출세를 해 봐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것만이 내가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그 꿈은 처음부터 절망에 부딪쳤다. 서울에 있는 모 법과대학 입시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내 생애 최초의 도전은 깊은 절망을 가져왔다. 너무 창피해서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올라가서 재수를 시작하며 형들과 누나가 자취하는 집에 끼어들어 숙식을 해결했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용기도 없었고 또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더해갔다. 그 즈음에 어떤 분이 나를 찾아 오셨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그 분의 손에 이끌려 항해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 많이 볼 수 있었던 그림처럼 거친 바다에서 나는 키를 잡았고 그 분은 나의 등 뒤에서 내 어깨를 감싸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할테니까 얼마든지, 어디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네 인생의 노를 저어서 깊은 바다로 나아가거라!” 그 때부터 나는 겁쟁이에서 벗어났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을 신뢰하며 살기를 시작했다.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3륜(판사, 검사, 변호사) 중 하나가 되기를 꿈꿨던 나는 3師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敎師)로8년, 한국에서 목사(牧師)로 29년(전도사, 강도사 포함)을 지나 지금은 선교사(宣敎師)로 7년 째(한국에서의 준비 기간 포함)를 보내고 있다. 여기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수많은 도전과 응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그때마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분의 사람이었기에 순종한 것뿐이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 분은 언제나 닫혀있는 문을 여셨고 걸어갈 길을 보이셨으며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그것은 일본어로 설교를 통역하는 일이다. 한국선교훈련원(GMTC) 원장 변진석 교수가 만노교회를 방문하여 “깊이 팝시다!”(마태 7:24-27)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고 나는 일본어 통역으로 첫 데뷔를 했다. 선교사가 현지어로 통역하는 것은 그리 자랑할 일이 못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그분의 도우시는 은혜를 체험한 또 하나의 간증이다.
20여 년 전 나는 한국에서 영어설교통역연구원이라는 기관에서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안산동산교회의 김인중 목사님과 같이 제2기로 졸업했다. 지금 이 기관의 훈련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M.A 학위 과정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번 영어설교 통역을 하면서 선교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다가 또 절망에 부딪쳤다. 강변교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에 있는 리폼드(Reformed)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 새뮤얼 랄슨 박사의 설교를 통역했다. 전에 은곡교회에서도 그의 설교를 통역한 적이 있어서 능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도전했다. 하지만 강변교회에는 나보다 영어가 자유로운 교인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통역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먼저 알아듣고 웃고 있었다. 그 때의 심정이란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일본 선교사가 되고나서 그분은 나에게 다시 도전하셨다. “이번에는 일본어 통역을 해보지 않겠니?” 다시 용기를 내어 통역에 도전했다. 긴장이 되어 침이 말랐다. 만노교회 교인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속으로 기도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그 순간 또 기적이 나타났다. 나도 놀랬고 교인들도 놀랬다. 나의 일본어 실력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아내도 놀랐다. 설교자보다도 더 담대하게 통역이 흘러 나왔다. 교인들은 오늘도 흡족한 은혜를 받으며 기뻐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홍혜경 교수의 인사가 있었다. 이번에는 아내 김진 선교사가 통역자로 나섰다. 통역이 처음인 아내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하지만 곧 부드럽고 유창한 일본어가 흘러 나왔다.
누군가가 기도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설교통역을 미리 알고 계속해서 기도해준 서울의 GMTC 교수들과 훈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의 SOS를 받고, 전 세계에 흩어져서 선교하고 있는 54기 동기 선교사들이 긴급하게 기도해 주었다. 동기들은 이래서 좋다. 땡큐이다!
나의 도전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과 기도에 대한 응답도 계속될 것이다. 행복은 좋은 환경이나 많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그분이 주신 꿈에 도전해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데 있다고 고백하며 감사드린다. 내게 있어서 인생의 행복은 “도전과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