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세계 교회사 7] 카롤링거 르네상스_안상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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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

안상혁 교수(합신, 역사신학)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8-9세기에 프랑크 왕국에서 꽃피웠던 문예부흥기를 가리킨다. 샤를마뉴(재위 768-814) 치하에서 프랑크 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서유럽을 포함하는 큰 나라로 성장했다. 샤를마뉴는 기독교에 기초한 하나의 통일화된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했다. 궁정 학교(schola palatina)를 세웠고, 유럽 전역으로부터 학자들을 모았으며,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도서관을 세웠고, 예술을 후원했으며, 중세 교육을 발전시켰다. 샤를마뉴는 자신의 궁전이 있는 아헨을 과거 로마에 필적하는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이런 맥락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는 로마 제국의 문화를 새롭게 복원하고 보존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샤를마뉴의 초청을 받아 그의 궁정에 모인 당대의 지식인들 가운데 영국 노섬브리아 왕국 요크 출신의 알퀸(Alcuin of York, c.735-804)이 유명하다. 781년 이탈리아에서 알퀸은 샤를마뉴를 만났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아헨에 설립한 궁정 학교를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알퀸은 이를 수락했다. 이후 샤를마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알퀸은 궁정 학교의 교과 과정을 체계화하고, 고대 로마의 교양 수업을 장려했다. 또한 왕국 내 모든 성직자가 적절한 교육을 받도록 노력했고, 예배 의식을 표준화했다. 796년에 알퀸은 투르의 성마르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알퀸은 수도원 학교 교육 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성경과 고대의 작품들을 필사하고 보존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는 왕국 전역에서 고대 사본들을 수집한 후에 이를 필사하여 여러 복사본들을 만든 후, 필사본들을 코르비, 플뢰리, 콜롱 등에 있는 수도원과 문서 보관소에 보관하도록 했다. 현존하는 고대의 텍스트 가운데 적지 않은 수효가 이 시기에 복사된 필사본이다. 또한 오늘날 알파벳 소문자의 모태가 된 카롤링거 소문자(Carolingian minuscule)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구약 성경의 다윗 왕을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델로 삼았던 샤를마뉴는 기독교 왕국을 꿈꾸었다. 교회 개혁과 성직자 교육을 강조했던 샤를마뉴는 일반인의 신앙과 도덕적 삶에도 관심을 가졌다. 프랑크 왕국의 모든 신민은 최소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애초에 문맹이었던 샤를마뉴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열심히 학습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샤를마뉴는 성경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알퀸으로 하여금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개정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알퀸이 일했던 투르의 성마르틴 수도원은 성경 제작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신구약 성경 전체를 한 권으로 제작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단권 성경(pandect Bible)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무티에-그랑발 성경이다. 840년경에 제작되었으며 거의 천 페이지 분량에 해당하는 449장의 양피지 폴리오로 구성되었다.

샤를마뉴 사후 그의 아들 경건왕 루이(813-840)와 샤를 2세(843-877)의 통치기에도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잦은 내전과 왕국의 분열로 인해 점차 역동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약점으로는 이것이 궁정 중심의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주도된 만큼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이 지적된다. 성경과 관련하여서도 이 시기의 주된 관심은 성경 원문 연구라기보다는 주로 라틴어 성경의 필사와 보존이었다는 사실을 한계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라틴 문화의 부흥이라는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특징과 관련이 있는 약점이다. 적어도 성경 연구 분야에서 ‘근원으로(ad fontes)’의 모토는 수 세기 후에 도래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에 의미 있게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서로마의 멸망과 중세 초 연이은 전쟁과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해 중단 혹은 퇴보되었던 문명의 빛을 다시 밝히는 데 크게 역할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샤를마뉴의 명령에 따라 각 주교좌 성당과 주요 수도원에 세워진 학교들은 중세기에 성경과 초대 교회의 유산을 보존하고 이를 다음 시대로 전달하는 문화적 구심체로서 유용하게 기여하였다.

 

무티에-그랑발 성경(Moutier-Grandval Bible, 프랑스 투르, c.830-840). 총 네 페이지의 삽화가 창세기, 출애굽기, 복음서, 그리고 계시록에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사복음서 첫 부분의 삽화 페이지이다. 중앙에 계신 그리스도를 네 복음서의 저자와 각 상징물이 둘러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