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시대의 교회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
초대교회사의 시간적인 범위는 대략 600년 가까이 된다. 주전(B.C.) 4년* 예수님이 태어난 해부터 주후(A.D.) 590년 그레고리우스 1세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교황으로 즉위하기 직전까지의 시기이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중세교회’의 시작을 의미하는 현대적인 ‘로마가톨릭교회’의 기본 체계를 완성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초대교회의 기간을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부터 그레고리우스 1세가 중세교회의 교황으로 즉위하기 직전까지로 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교회가 없었는가?” 구약 시대에도 이미 교회는 존재했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이 성육신하실 때까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표 속에서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며 살았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 시대의 교회 구성원이었다. 그래서 창조 이래로 교회가 존재하지 않은 때는 단 한 번도 없다. 당연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계속 존속할 것이다. 다만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구약 시대의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구원의 방식에 있어서 구약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렇게 볼 때,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교회는 외형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 대망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선민이었음에도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실제로 나타났을 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종교적인 형식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제사장, 율법, 성전, 할례 등으로 구성된 민족적인 종교공동체를 유지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은 마땅히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메시아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구별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새롭게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종교공동체와 완전히 구별되는 신약 시대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근원적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교회는 형식적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이 땅 위에 자신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10일이 지난 오순절 날에 자신을 대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택들을 제공하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 성령에 의해서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공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교회는 사역적인 면에서 세상이 끝날 때까지 모든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보화가 없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정리하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는다. 먼저, 신약 시대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예언의 성취와 약속된 성령의 공적인 임재 속에서 세워진 교회이다. 다음으로, 신약 시대의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이 함께 구성된 보편적인 교회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졌던 혈통적인 선민의 특권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모든 언어, 민족 그리고 지역을 초월하는 거룩한 보편 교회(ecclesia catholica)가 세워진 것이다. 끝으로, 신약 시대의 교회는 유대적인 전통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해 다스려지는 교회이다.
*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기준으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현대의 연대기 서술은 주후 6세기 로마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든 것이다.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가 엑시구스에게 부활절의 정확한 연도를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 연도를 찾는 과정에서 지금의 연대기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경의 기록들과 다른 여러 자료들에 대한 연구 속에서 지금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주전 4세기 정도에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