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송년의 길목] 믿음의 유산_권중분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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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유산

권중분 권사(노원성도교회)

 

꽃들이 신록들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환이 중하다고 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퇴원 후, 고향과 가까운 도시에 있는 오빠네 집에서 지내고 계셨는데 어머니는 고향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른 봄부터 시작한 농사를 돌보고 싶어서였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삶을 사시도록 돕자고 하고, 자녀들이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5월 부터 고향 집에서 함께 지냈다. 주일과 수요일에 예배당에 갈 때는 곱게 화장을 하고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예쁘게 차려 입으셨다. 예배를 드리고 교회 식구들을 만나 교제하는 날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틈틈이 밭일을 하고 보행기를 끌고 마실을 나가셨다.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뜨거웠던 여름을 몰아내고 햇빛이 순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호숫가 길을 걸어 도라지, 콩, 대파, 호박, 양대들이 자라는 밭으로 갔다. 길섶의 무성한 초목들 사이에는 코스모스, 민들레, 여뀌, 금계국, 새밥덩굴, 메꽃, 구절초 등의 야생화들이 청초하게 피어있었고 새들이 지절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호수에는 가끔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뛰어 오르고 황새들이 어정걸음으로 먹이를 찾거나 물풀들이 자라는 곳에 서서 쉬고 있었다. 어머니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밭에서 농작물들이 잘 자라도록 김매고 북주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2주간은 거동하기 힘들어 집안에서 지내셨는데 가정 예배를 드릴 때는 시편 말씀을 함께 읽었다. 91세 된 모태신앙인인 어머니의 기도는 간결하면서도 간절했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세계선교를 위해, 나라와 민족, 교회와 가족,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삶! 멋진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하나님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갓 태어난 너를 업고 함께 교회를 지었는데, 평생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대이, 감사하다! 너희들도 열심을 다해 주님 일에 힘쓰거래이.” 라고 말씀 하셨다. 어머니는 평생 교회를 사랑하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고 단정하게 사셨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선물로 주신 것들을 부지런히 보살피며 믿음으로 살아낸 어머니는 현숙한 여인이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진정한 풍성함이며 아름다움이다!

지난 가을, 요실금 때문에 어머니는 몇 주간 기저귀를 사용했는데 자녀들을 고생시킨다면서 무척 미안해 하셨다. 마지막 며칠은 자리에 누워 계셨는데, 어머니 옆에서 나그네 인생을 통찰하는 시편 23장을 매일 소리 높여 읽었다. 미안해하는 어머니에게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해요. 수고와 사랑으로 저희들을 돌봐주신 것 고마워요.”

나는 20년 전에 반복성 우울장애로 입퇴원을 반복했었다.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회복되어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 전에 내가 우울증으로 입원 퇴원을 반복하며 고향에서 지낼 때 사랑으로 보살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사랑하는 딸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랑한다, 축복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산들 바람이 곡식들과 버드나무 숲을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맑고 푸른 하늘에는 동쪽을 벗어난 태양이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평화스러운 주일 아침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은혜 주신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머니들과 부모님이 물려준 보배로운 믿음의 유산을 자손 대대로 이어가는 복된 믿음의 가문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새 봄이 오면 가끔 고향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던 작약들이 잘 피어나게 거름도 주고, 능소화 넝쿨이 자유롭게 뻗어나도록 돌봐야겠다. 감나무들과 구지뽕, 대추나무가 새순을 달고 부추, 달래, 냉이, 씀바귀, 민들레와 야생의 맨드라미와 채송화들이 싹을 틔우고 꽃이 피면 어머니의 작은 텃밭은 새 생명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꽃밭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