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개혁신보 창간 40주년 기념 교회교육 포럼] 합신 교회 교육의 현황과 대안 (1)_이동열 교수

0
76

기독교개혁신보 창간 40주년 기념 교회교육 포럼
합신 교회 교육의 현황과 대안 (1)

이동열 교수(합신, 기독교교육학)

 

지난 8월 30일 본보 주최 교회교육 포럼의 발제문 ‘합신 교회 교육의 현황과 대안’ 중, 지면 관계상 일부만 각주를 생략하고 게재한다. 논문 전체는 향후 다른 발표 매체를 참고하기 바란다- 편집자 주

다음 세대 교육의 새로운 틀을 위한 제언

1) 구조와 내용의 변화

현재의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형성의 교육을 위해 추구해야 할 다양한 변화들이 있겠지만 본 발제에서는 두 가지를 중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구조와 내용의 변화이다. 우선 구조적으로 이전의 주일 학교 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된 세대를 잇고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일 학교의 근간이 되는 공교육 제도는 기대하는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문 기관을 통해 연령별 전문가들이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자 세워졌다. 공교육 제도가 가정과 교회에도 영향을 끼쳐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자신의 1차적인 교육의 책임을 전문화된 기관들에 모두 이양했고, 교회 역시 학교를 따라 사역의 구조를 세대 분리적 구조로 바꾸었다. 이전에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함께 일하고 교제하고 예배하며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을 배우는 세대 통합적 구조를 포기하고, 연령에 따라 세대를 분리하고 각 세대별 전문 사역자를 세워 연령별 특성에 맞는 전문화된 신앙 교육을 시행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학교나 교회나 어디에서나 다음 세대들이 깊이 관계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또래밖에 없게 되었다. 또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모든 활동을 하고 배우며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문화 속에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음 세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숙한 성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가정, 교회, 사회에서 어른들과 함께 일하고 교제하고 예배하며 그들로부터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삶과 동시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가정은 전문 기관에 이양했던 모든 교육적인 책임을 자녀에 대한 1차적 교육 책임자로서 다시 가져와야 한다. 또 교회는 세대 분리적 구조를 세대 통합적 구조로 회복해야 한다. 학교도 역시 변해야 한다.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인력을 배출해 내기 위해, 또는 사회에 순응하는 시민들을 양성하기 위해 학생들을 관리 감독 통제하는 시스템과 구조 속에서는 결코 성숙한 인격과 성품을 가르칠 수 없다.

물론 각 연령별 특성을 배려하고 이에 적합한 교육을 시도하는 것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학교도 교회 주일 학교 부서도 다 없애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지나치게 편향된 지금의 세대 분리적인 구조를 어떻게 세대 통합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이 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전에 단지 부서 안에서 사역자 한 사람이 다음 세대들과 교제하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목양하는데 모든 사역적인 역량 및 시간을 쏟아 부었다면, 부모, 교사, 이외에도 가정과 교회의 많은 어른들과 다음 세대들이 함께 다음 세대와 만나 대화하고 교제하고 사역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들을 만들어 그들이 서로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사역의 구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통계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그 생각이나 태도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한 주에 적어도 30시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다음 세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와 또는 무엇과 보내고 있을까? 학교에서 거리에서 심지어 집이나 교회에서도 다음 세대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또래 혹은 미디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반면 이들이 말씀을 듣고 배우고 삶을 통해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168이라는 말이 있다. 한 주 168시간의 시간 중 다음 세대들이 정말 말씀을 배우고 접하고 경험하는 시간은 주일에 예배드리는 시간 및 이후 성경 공부하는 시간 합쳐서 한 시간이 전부라는 것이다. 반면 이들은 일주일 대부분의 시간을 또래 친구들로부터 또 미디어로부터 끊임없이 세속적인 메시지들을 마음에 담아내며 살아간다. 미디어로부터 또는 또래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세속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세속적인 가치를 따라 세상 속에서 바라고 욕망하며 살도록 삶의 기준과 방향을 마음에 담아낸다. 그렇다면 지금 다음 세대들을 누가 제자삼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 기독 가정과 교회는 정말 다음 세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결국 그들을 그저 세상의 제자로 아주 손쉽게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부서 사역자 한 사람이 부서에 속한 다음 세대들의 모든 영적인 책임을 홀로 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사역자 한 사람이 홀로 예배하고 교육하고 상담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등 모든 다음 세대 사역을 책임지고 감당하는 슈퍼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부서 사역자를 풀타임으로 세워도 사역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대 다수의 비인격적인 구조 속에 이루어지는 교육만으로는 결코 인격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다음 세대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들을 둘러 싼 신앙의 생태계를 이루어줄 수 있는 부모, 조부모, 교사, 교회의 어른들, 학교 선생님 등등 가능성 있는 어른들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다음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을 배울 수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은 이처럼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성숙한 어른들이 다음 세대와 깊이 교제하며 그 마음과 마음이 연결될 때, 자연스럽게 함께 예배하고 사역하고 가르치고 배우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둔 어른 세대들의 마음이 그대로 다음 세대의 마음에도 새겨지는 것이다.  

구조의 변화 못지않게 내용의 변화도 절실하다. 기독교는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기독교 신앙은 단지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Abraham Kuyper가 언급했듯이 기독교는 신앙과 신앙대로 살아가는 삶의 종합적인 체계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교회 봉사하며 사는 종교 생활만이 아니라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삼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의 유일한 규범일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규범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들은 자라가며 삶의 종합적인 체계로서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때 형성된 세계관을 따라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여 인생관으로 삼고 그 인생관에 따라 무엇을 가치로 삼고 어떻게 살아갈지 가치관을 갖는다. 학자들은 이러한 시기를 가리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라고 하였다. 자아를 형성하는 일은 단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일이 아니다. 발달 심리학자인 Erik Erikson과 그의 이론을 확대 발전시킨 James Marcia가 주장하듯이 다음 세대들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어렸을 때에 뚜렷한 자기 주관 없이 주위의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던 단계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큰 질문들과 씨름하는 모라토리엄 단계를 지나 평생 삶속에서 헌신하여 살아갈 정체성을 형성한다. 즉, 세상에 대한, 그 속에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들에 답하고 씨름하는 가운데 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해 가며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왜 교회에서 성경과 신앙을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들은 바른 신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숱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갈까? 바로 자신이 누구이며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발견하는 과정인 자아 형성이 지속적으로 유예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다음 세대들은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사회에서 성인들로부터 단절되어 더 이상 자연스럽게 성숙한 신앙과 자아정체성과 세계관을 배우지 못한다.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시대정신은 종교를 그저 마음의 안정과 만족을 위한 취미생활 정도로 격하시켰고 일상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단절시켜 버렸다. 이러한 시대정신이 더 이상 기독교를 삶의 종합적인 체계가 아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상담소 혹은 성공적인 삶을 위한 보조 수단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다음 세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디어들은 점점 그들로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시각적인 자극에만 노출되어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영상이 빨리 빨리 넘어가다보니 생각하는 능력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업주의에 물든 미디어들이 비어 있는 다음 세대들의 마음에 왜곡된 자아, 세속적 세계관을 심어주고 있다. 이 모든 복합적 현상들이 공동체 안에서 빠른 기간 자리 잡아야 했을 자아상과 세계관 형성을 지속적으로 유예시키고 있는 것이다.

혼동의 시대 가운데 다음 세대에게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자아 정체성과 세계관을 전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오늘날 가정과 교회는 다음 세대에 분명하고 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전해 주어 그들로 하나님 안에 바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는가? 자녀에 대한 모든 신앙적 교육적 책임을 전문 기관에 이양하고 두 손을 털어 버린 부모로부터 다음 세대로 신앙의 대가 이어질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교회 공동체의 다양한 세대로부터 분리시켜 특정 세대의 발달 특성과 눈높이에 사역의 초점을 맞춘다는 명목 하에 재미와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사역만으로 다음 세대에 성경적 세계관을 심어 줄 수 있을까? 한 주에 한 두 시간, “예수님은 가장 좋은 친구,” “네가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 “너의 상처를 아시고 치료해주시는 분,”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고백과 가르침으로 가득한 예배와 메시지가 종교는 공적 영역에는 하등 관계없는 사적인 선택 사항이라며 철저히 이분법적인 사고와 삶을 가르치는 세상의 거친 소리들로부터 다음 세대를 지켜낼 수 있을까? 진정한 형성의 교육을 위해서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다음 세대들이 어떤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말씀과 신앙을 어떻게 그저 지식으로서만이 아닌 마음에 담기고 삶에 녹아지도록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2) 새로운 사역의 큰 그림

지금까지 다음 세대 신앙 교육을 위해 어떠한 변화들이 필요한지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끝으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하나의 사역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아래 모델은 앞서 언급했던 Ross교수가 그의 책 『Youth Ministry That Lasts a Lifetime』에서 제시한 청소년 사역 모델이다. 발제자도 이 책의 공저자로 이 모델을 고안하는데 함께 참여하였다. 이 모델은 그 이름의 의미대로 어떻게 하면 청소년 사역이 그저 부서 안에서만 지속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서에 속한 한 영혼 한 영혼이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세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가운데 만들어졌다. 아래 표가 부서를 거쳐 가는 한 영혼이 이후로도 평생을 하나님 앞에 살아가도록 사역의 철학과 목표, 구조와 영역, 내용, 결과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래 제시하는 사역 모델은 결코 모든 교회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The Model”이 아니라 앞선 고민들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A Model”이라는 점이다. 현재 사역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좀 더 균형 잡힌 사역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나온 하나의 모델일 뿐이다. 각 지역 교회의 상황과 형편과 문화가 각자 다르고 또 각 사역자의 상황과 역량도 다르기 때문에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교회별로 다를 것이다. 따라서 아래 제시하는 모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일괄적으로 적용하려하기 보다는 이 모델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철학을 함께 공유하고 각 교회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지혜롭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저 한 번의 포럼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교육 당사자들이 함께 만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대화하며 기도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이루어가야 할 숙제이다. 이 포럼이 그러한 지속적인 대화와 나눔의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표 1] 청소년 사역의 모델

 

(1) 사역 철학과 목표

지금까지 다음 세대 사역의 철학과 이에 따른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모든 사역자들이 궁극적인 사역의 목표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목표, 사역자로서 부서를 맡고 사역의 전반적인 방향을 맞추어 끌고 가는 목표와 철학은 각각 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 다음 세대 사역을 고려할 때 많은 사역자들의 다음 세대 사역 철학과 목표가 대부분 부서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부서 안에서 어떻게 다음 세대를 변화시킬지, 부서 안에서 어떻게 모임을 활성화할지, 부서 안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선교를 하고 훈련을 할지 등등 모든 사역의 초점이 부서 안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 한창 한국 교회가 부흥의 시기를 맞이했을 무렵에는 사역의 목표를 수적인 부흥으로 삼기도 했다. 특히 교회가 수적인 부흥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에는 더 그러했다. 매주 출석을 보고하고 수가 늘면 잘한 것이고 수가 줄면 실패한 거라고 판단 기준을 정해 놓게 되면 거기에 맞추어 사역의 목표가 정해지고 그 목표대로 사역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영혼 구원과 교회의 부흥은 언제나 마음에 품고 기도해야 할 일이지만 사역의 목표를 이처럼 수적 부흥으로만 맞추어 놓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반대로 오늘날과 같이 부흥이 멈추고 교회가 침체기를 겪는 시기에는 부서 사역자에게 그저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다음 세대들에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 이들이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역자는 또 이에 따라 사역의 목표 자체를 그저 부서 아이들이 떠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사역하게 된다.

다음 세대 사역을 위한 좀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단지 자기 부서만을 생각하는 부서중심적인 사역, 자기중심적인 사역을 해서는 안 된다. 또 단지 교회가 수를 요구하면 거기에 맞추고 교회가 울타리를 요구하면 거기에 맞추며 교회의 요구에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사역을 해서도 안 된다. 한편 이렇게 사역해서 부흥했다느니, 이 사역자가 사역을 탁월하게 해서 성공했다느니, 이 교회 부서가 탁월하고 훌륭하다느니 자기 철학과 목표 없이 그저 성공했다는 트렌드만 따라다니는 실용주의적인 사역을 해서도 안 된다. 사역의 초점이 이처럼 자기 성공 및 생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데 있다면 그 한 영혼 한영혼의 평생의 삶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들이 평생 하나님 앞에 걸어갈 길을 보지 않고 그저 부서 내에서 3년 혹은 6년 있을 모습만 바라보아서는 결코 형성의 교육을 이루어낼 수 없다. 따라서 어떻게 사역의 철학과 목표를 정하든 그 사역은 한 영혼 한 영혼의 일생, Life Time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경으로부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어떻게 성화되어 가기를 바라시는지 분명한 그림을 갖고 부서의 아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