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그릇이 되어
김명철 청년 (동남교회 찬양팀)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2022년 경북노회 학생 연합수련회에서 찬양팀을 맡은 동남교회 찬양팀에서 일렉 기타로 노회를 섬긴 김명철 청년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여러 노회의 사정들도 있었겠고 준비과정에도 변수가 많아 보인지라 찬양팀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사다난했던 기간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는 목적을 두고 있고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결국 처음과 끝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믿음과 함께 맡겨드리며 담대히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 온전한 방법이라 생각하며 이 과정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제 위치가 여느 교사로 섬기신 분들이나 학생들, 교역자분들의 시선과 다를 수도 있다는 관점을 안고 제가 들은 말씀들과 제 간증들, 그리고 이 시대에서 저를 포함한 학생, 청년들의 미래도 함께 바라보며 작은 말들을 나누어 보고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감문이자 감상문이자, 간증문이자, 믿음의 발자취를 제출할 수 있는 것, 나눌 수 있는 것,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드리고 조금은 수고롭겠으나 기쁜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저희 찬양 팀은 찬양의 준비와 즉각적인 변수에 대한 소통과 피로의 회복 등에 집중한 나머지, 집회 말씀들 외에는 다른 특강과 프로그램은 참여하지 못하여 나눌 만한 거리가 있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만 충분히 좋은 특강과 프로그램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본론에서 제가 나누고 싶은 내용들은 김남국 목사님의 집회마다 말씀하신 내용들과 학생 수련회와의 접점, 그리고 그 내용들과 제 삶의 간증들을 함께 엮어서 글을 나눌 것이며 결론에서는 제가 깨달은 바로서의 결단 내용과 학생들과 청년들에 대한 도전적인 메시지 등을 나누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김남국 목사님께서 요셉과 욥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역전시키시기도 하는 분이시며 그 과정에서 철저히 낮아짐을 요구하시기도 한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가고 거기서 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가고 나중엔 누명까지 써서 감옥까지 내려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낮아짐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꿈의 해석으로 부르기 바로 전까지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지켜나갔을 때 그는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는 이미 하나님이 높이시기에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학생 때를 기억하듯이 지금의 학생들도 학업에서 뒤처진다 생각되기도 하고 그들의 가정과 삶의 환경이 남보다 못하다 느끼거나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되는 순간들이 충분히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생 때 이렇다 할 자랑거리도 없었고 지금조차도 또래에 비해 취업도 인생의 시기도 많이 늦은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에서 보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법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믿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분명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라면 요셉과 욥처럼 우리 삶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철저히 낮아지고 힘든 상황 속에서 괴롭고 슬프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훈련되고 거듭나기를 바라시며 정금 같은 모습이 갖추어졌을 때 놀랍게 바닥에서 높은 자리로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랍고 아름다운 섭리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이 믿음의 순간들을 꼭 잘 이겨나가기를 자신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응원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말씀 중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비그리스도인들조차도 단번에 인정케 되는 사람, 즉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우리 또는 내가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입니다. 목사님께서 믿지 않는 친구분들과 교제하시면서 다른 목사님들과는 다르게 ‘너는 진짜 목사다’ 또는 ‘하나님의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들은 경험을 얘기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을 설교 중 들으면서 생각 난 사람은 열왕기상에 나오는 여로보암 왕이 분향하는 것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지만 벧엘의 한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 결국 결말은 안 좋게 끝나는 인물이 떠올랐습니다. 학생들은 지금뿐만 아니라 더욱 자라나면서 세상에 나가 살게 될 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지고 단번에 인정되는 그리스도인은커녕 그리스도인인지 모르게 지내는 모습이 생기며 자신이 기독교라는 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부끄럽게 여길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정이 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기에 그런 성도,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길 유혹은 덜 했지만 제 삶이 부끄러울 때는 저조차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숨기고 싶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의 맥락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의 형식적인 이미지, 우리의 감정과 생각보다도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그리고 말씀을 지키면서 사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세상에 비추어질 때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서 더욱더 성화의 삶을 이루어나가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말씀을 순종하는 삶의 행실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번에 인정받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람, 저 사람이 바로 진짜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그런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말씀 중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사탄 마귀의 ‘잽 시험’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목사님께서 사탄 마귀가 시험을 주는 방법을 재밌게 설명하셨는데 많이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대안이 없고 위급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겠지만 권투 기술 중의 ‘잽’ 같이 적당히 충격을 주면서 놀리는 듯한 시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흩어지게 되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보다 우리의 이성과 인지가 살아있어 오히려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이 더 쉽게 나온다는 내용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저는 수련회의 기간에 그 잽 시험을 경험했습니다. 그전에도 그런 시험들이 많았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라는 믿음으로 이겨내기도 했지만, 이번 수련회 중의 시험은 너무 고되고 괴로웠습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의 상처와 약점을 알기 때문에 그것과 연관시켜서 시험을 하는 존재이므로 그 시험을 마주하는 모양이 겉으로 남들이 봤을 때는 인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시험 겪는 성도의 내면은 너무나도 힘들며 그 시험의 골이 깊어질수록 마음과 생각은 순식간에 비참하게 무너지곤 합니다. 저는 너무 괴로워 SNS로 친한 사람에게 마음이 힘든 것을 토로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처음에는 불평, 불만이 나와서 힘들었지만 입은 다물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못 견디면 입으로 죄를 짓게 되고 입으로 남들에게 화살을 쏘게 된다는 것을 신앙의 연단을 통해 깨달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비참함과 부끄러움을 마음속으로 충분히 견뎌냈다고 생각하며 입술의 파수꾼으로 그 힘든 순간을 오랫동안 모면하고 나니 조금 정화가 되었고 그 이후 마음속으로 기도가 조금씩 드려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회복이 되었던 것 같아 정말 잘 넘어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질풍노도의 시기, 혈기 왕성한 시기, 청소년기, 정체성이 혼란한 시기 등 너무나 격변의 시기를 겪기 때문에 더욱 충동적인 순간들이 많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어가며 넘어가고 싶은 사실은 사탄 마귀는 우리를 시험 들게 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 결국 시험은 찾아오지만, 입술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입술에는 파수꾼을 세우고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게 애쓰며 기도하면서 다시 하나님만 바라보며 죄를 정화할 때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그 상황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말씀 중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사탄 마귀는 우리의 가장 약한 것을 이용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 곧 우리 마음의 우상을 이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많이 공감한 부분이었고 실제 제 삶 속에서 시험과 연단을 통해 극복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부분으로서는 신앙의 시험 거리나 유혹 거리가 많이 없었습니다만 유일하게 이성 친구에 대한 갈망이 가장 견디기 힘든 소재이자 기도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꼭 이 이성 친구에 대한 갈망만 생각하면 불평, 불만이 쏟아지고 하나님께 빚을 갚으라는 듯이 뻔뻔해지기도 한 제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는 당연히 기도를 많이 했고 제가 원하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야 하지 왜 안 들어주시냐 이런 마음이 컸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기도를 했는데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시니 그런 생각이 인간적으로는 들기도 했나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긴 기간 동안 응답받지 못하면서 느낀 것은 사탄 마귀는 이 내 약점, 갈망을 이용해서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간질 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결국 하나님과 소통과 교제보다도 이 약점이자 갈망을 더 구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형식적으로는 믿음의 간구라고 포장하였으나 결국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돈이 됐든 이성 친구가 됐든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우상이 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철저하게 낮아졌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셨고 순종을 배우게 하셨고 우상을 결국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내려놓고 나니 수긍한 부분도 있지만 그전에는 없던 평안도 생긴 거 같긴 했습니다. 학생들도 약점과 자신만의 갈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당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갈급함, 갈망, 기도는 용납될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계속 구하다가 그 기도가 불평, 불만, 우상의 모습이 되어버리진 않을지 염려됩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의 약점, 욕심이 될 수 있는 갈망을 이용하기도 하니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려놓는 것, 하나님의 뜻과 때를 믿는 것,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믿고 사랑할 수 있는지 점검하면서 믿음 생활이 더 성숙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말씀 중 사람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믿음 안에서 성실히 집중하여 성과를 이룬 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다른 일들에도 성취를 누리게 하시고 나아가 더 큰 일에도 쓰임 받게 하신다는 것, 따라서 그 모든 성취의 과정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임 받게 하시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해보지 못하였고 공부하는 것을 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늦은 시기가 되어서야 이제야 이 집중하며 성과를 이루어가는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늦었지만 조금씩 성과를 바라보고 있고 이 시기들을 통해 다른 것에도 은혜와 능력들을 허락하시고 앞으로 더 믿음 안에서의 성과들을 통해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실 모습들을 기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렉 기타로 섬긴 것 또한 일렉 기타를 처음 접하고 본 교회에서 섬긴 기간은 길었으나 제가 더 믿음 안에서 집중하며 더 나은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도 지금은 대부분이 학업에 열중하며 신앙의 정체성과 그들의 인생의 정체성도 알아가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힘써야 하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공부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신앙도 의무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본인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왜 열심히 하면 좋은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가, 믿음 안에서 성취는 어떤 방법이 바람직할까하는 그런 동기와 믿음 안에서의 성찰의 과정을 통해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실천해나가면 더 좋을 것 같고, 신앙도 가야 하는 것, 섬겨야 하는 믿음이 아니라 왜 가는가, 왜 섬기는가, 나는 하나님과 어떤 사이인가,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 등의 본질적인 질문과 능동적인 깨달음과 의지를 통하여 학생들이 삶을 주체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그런 통찰과 인지를 도와줄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회 선생님들, 교역자분들, 부모님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결론을 맺으며 제 나이, 어리지도 않으며, 많은 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안 해 본 나이도 아니며, 이렇다 할 것들을 이룬 나이도 아닌 이 시절의 삶을 돌아보며 제가 경험했던 하나님, 저와 함께하시던 하나님, 제 삶을 인도해주신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시던 하나님, 제 삶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저를 낮추시고 연단 하셨지만 앞으로 선하게 일으켜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복음의 원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역설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복음 안에서 낮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신앙인인 척하지 말고 세상에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단번에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우리 자신이 바로 세상에서는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사탄 마귀가 약 올리는 시험, 심기를 건드리는 시험을 준다 한들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며 마음으로 죄를 짓지 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훈련합시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 하나님과 이간질 하겠지만 담대히 우리의 욕심과 갈망을 내려놓아 버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그런 위기 때 오히려 훈련해서 극복해봅시다. 우상 따위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가 섬기던 신전의 우상 조각을 밤에 박살을 낸 것처럼 우리도 과감히 깨부수어 버립시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합당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일에 성실히 집중하고 성과를 이루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에 준비되는 사람으로 거듭납시다.
어느 찬양 중의 구절이면서 말씀 구절로도 알고 있는데 이 좋아하는 구절을 묵상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이제 곧 오실 우리 왕’… 구원받기 전, 그리고 구원받은 날 이후로 지금까지 동행하시고 지켜주신 어제의 성부 하나님, 인생의 앞을 위해 열심히 집중하며 믿음의 연단들을 겪어가며 실제로 삶 속에서 성화의 과정으로 함께 하실, 우리와 끊임없이 소통하실 지금, 현재, 오늘의 성령 하나님,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의 힘든 나그네 삶을 영원한 거처로 인도하시며 영원한 축복과 은혜 가운데 우리를 맞아주실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구름 타고 오실, 이제 곧 오실 성자 하나님, 예수님. 삼위일체 되시고 홀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