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너와 나 – 딸에게 보내는 편지
차선경 집사(열린교회)
너와 나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하나님 가족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이 행복을 항상 생각하자
기나긴 이 무더위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끝은 있을 거야. 분명히 엄마도 여름을 좋아했지만 참 매일 같은 이 무더위에 슬슬 짜증이 난다. 더욱이 틈을 노려 놀기만 하려는 너를 보는 것도 지치지만 그래도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머나먼 북녘에 책임지지 못하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래도 너는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너에게는 말 못하는 엄마의 고뇌를 우리 하나님은 아실 거라 믿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가끔은 엄마가 혼자 있고 싶어 해도 나는 네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직 어리기만 한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때로는 그 미안함이 화로 침묵으로 너를 긴장시키기도 하지. 가끔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안절부절하는 너를 볼 때마다 “하나님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저는 이런 현실이 그리고 이런 불안함이 너무 싫습니다” 하고 기도할 때도 있지만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에 엄마는 항상 감사하지.
딸아. 너와 내가 주님 안에서 가족으로 만난 건 큰 은혜라고 생각해. 우리가 가는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고 때론 죽고 싶을 만큼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때 하나님은 너를 내 옆에 있게 해주셔서 낯선 타향에서 너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게 해 주셨어.
요즘은 네가 많이 커서 마음도 생각도 많이 자란 것을 느끼지만 엄마에게 너는 항상 어린 아이야. 슬슬 커가며 짜증부리는 날도 많지만 그래도 그 짜증조차도 엄마에게는 감사함이야. 하음아 엄마는 말이야 짜증을 부릴 수 있는 부모가 있었음 좋겠어.
딸아. 너도 엄마가 탈북인이라는 것을 알지? 대한민국에 탈북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오신 분들이 많아.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가 않아. 너를 앉혀놓고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솔직히 이 말을 하는 자체가 트라우마라 궁금해 하는 너를 보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했지.
그래도 글로나마 너에게 이렇게 알려주고 싶어. 엄마는 북한의 자그마한 지방도시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어. 비록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바나나나 귤은 마음껏 먹지는 못하고 살았지만. 다정다감한 아빠와 그리고 조금은 빈틈이 많은 엄마, 이런 엄마의 빈틈을 2배 3배로 메꿔 주는 외할머니, 그리고 매일 투닥거리던 두 언니와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다복한 집안의 셋째 딸로 엄마는 결핍을 잘 모르고 컸던 것 같아.
하지만 하루아침에 닥친 남동생 사건은 우리 집안을 현대판 종파로 몰락시키고 말았어. 남동생이 수용소에 같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6개월 사이에 나는 세상 전부였던 아빠와 엄마를 잃었고 졸지에 고아가 됐지.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나는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그 사회가 싫고 또 살아야 할 이유도 없기에 나느 그 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물론 자식도 있는 엄마가 그 아이를 놓고 타향살이를 선택해야 하는 그 상황에서 무슨 생각인들 안 했겠냐만 그때 엄마의 마음은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어.
그때 엄마 나이 32세. 계급 사회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우리 집안 같은 상황은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너의 아빠와도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어. 그래서 떠난 길이 이어져 오늘이 됐어. 정작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기는 했지만 단둥에 도착했을 때 내 마음은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 생소한 도시 그리고 생소한 사람들뿐인 곳.
그런데 말이야 힘든 상황 속에서 나는 네가 내 뱃속에 있다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지. 지금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너 없는 내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나는 그때 너무나 절망적이었어. 미안하고 또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하지만 딸아. 하나님은 이런 나의 모든 사정을 내가 믿지 않던 그 시간과 상항들 가운데서도 항상 나를 품으시고 돌봐주셨어.
압록강을 건너 약속했던 사람이 못 나오고 나는 교회의 도움으로 단둥에 숙소를 잡았고 거기에서 너의 임신 사실도 알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어. 단둥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들을 때 32년을 김일성, 김정일 사상으로 세뇌되었던 나는 완전 혼돈에 빠졌어.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됐지. 아.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불안한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너를 지켜 주셨고 엄마를 지켜주셨어. 그때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 안에 계셨고 지키셨고 그리고 사랑하셨어.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 주셨고 힘들 때 부모가 되어주셨고 그리고 바람 불어 휘청거릴 때 지팡이가 되어 주셨어. 엄마가 이렇게 너에게 엄마의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어. 요즘 학업스트레스가 많은 네가 목표를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 어떤 책을 보니까 인생의 길을 올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3가지를 질문하면 된다고 했어. 첫째 네가 원하는 길인가? 둘째 남들도 그게 네 길이라 하는가? 셋째 운명도 그것이 너의 길이라 하는가?
그런데 엄마는 네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고 싶어.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가?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가고 있는가? 셋째, 하나님이 나의 길을 보시고 기뻐하시는가? 사춘기로 방황하는 너의 지금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딸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는 바람을 갖고 살아가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세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 너와 나밖에 없는 이 세상이지만 너와 나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하나님 가족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이 행복을 항상 생각하며 외롭지 말자.
– 어느 더운 여름날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