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향기 14] 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0_김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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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0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의 직무를 수행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부왕으로 창조되었다면, 인간에게 부여된 왕의 권세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부여된 왕의 권세는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구약에서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부르는 “명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어떤 인물이나 사물의 특성이나 본질을 규정한다. 가령,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창 17:5)이나 “사래”가 “사라”로 바뀐 것(창 17:15)이나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창 32:28)은 해당하는 인물의 지위와 특성에 일어난 변화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주어진 대답은 이름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주신 대답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ehyeh ’ǎšer ’ehyeh, I will be who I will be)는 그 의미가 모호하다. 학자들은 이 이름이 “정의(定義)의 새장에 갇히지 않는 하나님의 자유”를 나타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름을 아는 것은 본질을 아는 것이며, 본질을 아는 것은 통제와 지배를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에게 언제나 모호성을 띨 수밖에 없다(삿 13:18 참조). 하나님에 관한 한 인간은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해주시는 부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구약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를 고려할 때,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아담의 행위는 동물에 대한 지배를 나타낸다. 이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행위를 닮은 것이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지으시고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셨으며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셨다(창 1:5, 8, 10). 이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의 본질과 특성을 규정하시는 한편 그것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시는 만유의 통치자이심을 드러낸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본받아 동물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한다. 아담이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에게 각종 동물의 특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지혜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통찰력과 지혜는 지혜의 본체이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로써 세상을 지으셨다(잠 8:22-31; 시 104:24; 136:5 참조). 특히 욥기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 속의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밝힌다(욥 38:36). 구약은 여러 곳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지혜의 영”(신 34:9) 또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는 “하나님/여호와의 영”(출 31:3; 35:31; 사 11:2)에 대해 말씀한다. 따라서 태초에 아담이 동물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지혜의 영”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겔 28:11-19 참조).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일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2:18-23에서 동물들에 대한 아담의 행위와 하와에 대한 아담의 행위는 평행을 이룬다. 먼저는 하나님이 동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아담에게 이끌어오시자 아담이 각각의 이름을 지어준다. 그다음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시고 그녀를 아담에 이끌어오시자 아담이 그녀의 이름을 지어준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동물의 창조 → 아담에게로 이끄심 → 아담이 이름을 지음
하와의 창조 → 아담에게로 이끄심 → 아담이 이름을 지음

위의 구조는 기록자의 의도를 나타낸다. 기록자의 관점에서 동물은 하와와 대조를 이룬다. 이 대조는 아담을 위한 “돕는 배필”(‘ēzer kenegdô, a helper corresponding to him)에 관한 기사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동물을 창조하여 아담에게 이끌어오시고 그들이 아담의 배필로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신 다음 여자를 창조하여 그에게 이끌어오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신 여자만이 아담의 배필이란 사실을 드러내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담이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에 이름을 지어주신 일과 유사한 일로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지위와 위치를 나타낸다.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통치권 내지 “통치적 우선권”(a governmental priority)을 가진다. 하지만 여자는 그저 지배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서 남자와 한 몸을 이루는 특별한 존재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위치에 있지만 동시에 남자의 조력자이면서 보호와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엡 5:22-33 참조). 이 기본 질서 안에서 세상이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이 기본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는 타락이다. 인류의 타락이 동물(뱀)의 말에 굴복한 여자와 여자의 제안에 복종한 남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창 3:1-7 참조).

다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 문제로 돌아가 보자. 동물에 대한 통치권은 땅을 정복하는 사명과 함께 간다(창 1:28 참조). “정복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카바쉬”(kābaš)는 여호수아 시대의 정복 전쟁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민 32:22, 29; 수 18:1 참조). 창세기 저자는 앞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적대적인 가나안의 세력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할 일을 내다보며 이 단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곳의 지리적 중심(실로)에 성소를 세움으로써 그 땅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통치하시는 곳이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수 18:1 참조). 주목할만한 점은 동물과 땅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과 지배권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계속 새롭게 부각 되는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노아와 솔로몬을 꼽을 수 있다. 노아는 홍수 심판 후에 새로 형성될 인류의 첫 조상에 해당하므로 아담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노아는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홍수 직전 각종 동물이 노아에게 나아와 그의 인도로 방주에 들어간다(창 7:9 참조). 이는 노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부왕의 권세로써 동물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솔로몬에게도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 솔로몬은 말년에 타락한 일을 제외하면 지혜롭게 통치한 왕이었다. 솔로몬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면서 지혜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에게 최고의 지혜를 허락해주셨다(왕상 3:12).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백성이 솔로몬에게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두려워할 정도였다(왕상 3:28). 흥미롭게도 그런 솔로몬에게 식물학과 동물학에 대한 남다른 지식이 있었다. 열왕기 기자는 솔로몬이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하였다]”(왕상 4:33)고 알려준다. 솔로몬은 또한 유브라데 강부터 블레셋 지역과 애굽에 미치기까지 넓은 땅을 다스렸다(왕상 4:21).

이는 태초에 아담이 한 일과 연관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동물의 본질과 특성을 파악하고 각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의 직무를 수행했다. 태초에 아담이 수행했던 일이 솔로몬에게서 그대로 계속된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부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아담(인간)의 존재의의가 솔로몬을 통해서 새롭게 확인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이해는 더욱 힘을 얻는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내용은 솔로몬의 통치에 대한 묘사가 이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열왕기 기자가 소개하는 솔로몬의 초기 치세는 에덴동산의 재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전쟁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이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왕상 4:25). 이러한 묘사는 솔로몬 시대의 실상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부왕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때 이루어질 복된 나라의 모습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