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 주님이 결정하는 삶_안정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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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결정하는 삶
– 이제 주님이 결정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안정위 장로(세대로교회)

주님을 전심으로 붙들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되기를

먼저 이렇게 제게 새 생명을 주신, 삶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의 회복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해 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작년 11월 중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호흡곤란을 시작으로 중증상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구급차에 실려 의정부의 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그렇게 의식 없이 혼수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3주 이상의 코로나19 중증치료를 받았습니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회복될 확률이 10% 미만이었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중 가족들에게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권고도 있었다고 합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제가,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밝은 얼굴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기에(행 4:20) 이렇게 감사의 글로서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선, 감사의 제목으로 최선의 치료가 가능한 병원의 연결과 의료진을 통하여 치료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인공호흡기에서 산소호흡기로, 산소호흡기에서 에크모(ECMO) 시술로, 호흡이 부족할 때마다 가장 적합한 치료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라는 말씀처럼(시 150:1~6), 우리가 일상 가운데 자각 없이 누리고 있는 이 호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흡기의 도움을 받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섬망(Delirium) 증상이라고 하는 정신착란이나 몽유병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저 또한, 심한 섬망 증상을 겪었습니다. 퇴원하고 보니 양손과 발에 제가 무의식중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멍 자국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섬망 증상이 나타나면 욕설과 분노, 원망의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섬망 증상 속에서도 주님을 찾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이처럼 사경을 헤매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도 하나님의 만져 주심과 회복케 하심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 가족들을 한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전 세계에서 저를 위해 많은 선교사님과 목사님들께서 금식하며 중보로 기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속한 세대로 교회(서울 송파구)의 금식 릴레이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저를 다시 소생시켜 주신 하나님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회복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다시 살려주셨을까? 억울하고 불의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악이 득세하는 세상인데 왜 나를 다시 살려주셨을까?’ 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살아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El Shaddai))이다’라는 것을 저를 통해 세상에 보이고자 하신다는 것을 이번 계기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장로로서, 훈련받은 선교사로서 솔직하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예배에 출석 잘하고, 헌금 생활하며, 이웃사랑하고, 성경공부하고 선교훈련 등, 이러한 종교 활동의 모습을 통해 정작, 속사람의 변화에는 둔감한 채, 드러나는 모습만 통해 예수를 잘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죽음의 문제 또한 누구나 겪는 정해진 사실이고, 우리의 삶과 죽음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종종 하나님보다 세상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즈니스다 미션이다 라며 두 쪽에 발을 담그고 제 편리대로 저울질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단순한 신앙생활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 제게 확 와 닿았습니다. 제 인생에 확실한 분기점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 유용하고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로 한 사건은 단순한 사교활동도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공짜보험을 든 것처럼 삶의 영향을 주지 않는 그저 단순한 지적인 동의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기로 한 것은, 더 이상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연연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이고, 이 세상의 성공과 출세에 내 인생의 최고의 목표를 두지 않기로 했다는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살기로 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죽임을 더 이상 인생의 종착점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 시작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저를 다시 살려주신 만큼, 남은 인생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십자가를 믿는 것임을 강력하게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니, 십자가 복음에 온전히 붙들리지도 않았으며, 전심으로 주님만을 붙들지도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하여, 앞으로 주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을 털어버리고, 주님을 전심으로 붙들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이렇게 극적인 경험을 하였다고, 제 상황이나 주변이 180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성도님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런 제 고백이 진부하게 느껴지시나요? 그저 허공의 메아리처럼, 들리시나요?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바람을 꾸짖으시고(막 5:39) 또 그 바람으로 인하여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셨던 주님(막 6:48),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상황이 어떠하든, 바람을 그치시고, 물위를 걸으셨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주님이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폐의 절반 정도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호흡이 많이 부족하고, 온몸의 근력 특히, 다리 근육이 회복되지 않아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몸일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에 온전히 사용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직 예수’로 주님이 가라시면 가고, 서라시면 서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아, 푯대를 향하여 남아있는 나머지 인생을 주님이 원하시는, 주께서 주인 되신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처럼 이제야 ‘껍데기를 벗고’ 나온 것 같습니다. 주께서 주를 향한 마음을 주시고, 기억나게 하신다면 저와 제 가정이 주님이 원하시는 모양대로 ‘탈피’ 하여 주님이 주시는 귀한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또한 기도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끝으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성경구절을 나누고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시편 118: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