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 신비로운 연합을 삶으로 경험하는 성도들_류성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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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목사신비로운 연합을 삶으로 경험하는 성도들

류성민 목사(성가교회, 합신 조직신학 강사)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은 실제 결과물로 역동적 선의 추구를 만들어 낸다

사람은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는 사람이 영혼을 가진다는 존재의 의미에 더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하며 교제하며 그를 섬기는 영적 행위를 한다는 경험의 의미를 포함한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영적 존재로 만드시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영적 삶에서만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참된 기쁨과 행복은 여기에 있다. 더하여 이런 영적 삶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의 삶이 아니라, 현실에서 추구되고, 이루어지는 경험의 삶이다.

다만 타락 이후, 사람에게는 영적 삶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욕구만 남았다.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된 영적인 것을 사람이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육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하게 되었다. 영과 육에 대한 오해 때문에, 영육이원론에 빠지거나,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영의 본질에 대한 추구를 형이상학이란 사변의 철학으로 추구하거나, 최근에는 가상 세계를 통해 영적 세계를 향한 사람의 성향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참된 영적 삶, 즉 하나님과 관계된 삶과는 관계가 없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선택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구원을 베푸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참된 영적 삶에 대한 지식과 욕구를 주신다. 이 지식과 욕구는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내용을 포함한다. 특히 영적 삶의 회복과 관련된 구원의 내용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예정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더욱 신비로운 것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영적 삶의 지식과 욕구가 신비롭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사람의 손을 떠나 저 멀리 있는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현실의 구원 경험으로 존재한다.​

신비로운 연합은 구원과 관련된 영적 삶을 다룬 주제 가운데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신비로운 연합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이 관계할 수 없고 그 원리와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내용을 충분히 알려주셨고,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주신 구원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깨닫게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이 신비로운 내용은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결코 추상이나 이론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실제의 경험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구원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에 대한 지식을 알고 이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를 성령님을 통해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구원의 경험, 즉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경험한다. 이 경험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순간 그리스도와 연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던 연합을 믿음으로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지만 믿음을 통해 이미 존재하던 연합을 깨닫는 감격을 경험한다.

이 연합은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다. 첫째, 이 연합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실제 결합을 의미한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가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오는 교환을 의미한다. 우리는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죄 용서의 은혜와 의로 인한 영생의 획득을 경험한다. 즉 영원전 예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기로 한 비밀스런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현실 속에서 직접 우리에게 감격스럽게 경험된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첫번째 의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 용서로 인한 감격을 누리고,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영적 삶의 지식과 욕구를 소유하게 된다.

둘째, 이 연합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기 때문에 어떤 것도 결코 끊을 수 없다. 이 연합의 근거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 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우리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인식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믿음이 연합의 근거는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적으로 시공간에서 성취되는 것을 믿음을 통해 알고,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연합이 다시 깨지고, 분리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깨질 수 없는 연합은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인 위로와 격려를 준다. 만약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이 우리의 믿음에 근거하거나 혹은 우리의 경건한 삶에 근거하거나 혹은 우리의 지속적으로 인내하는 성품에 근거한다면, 이 연합은 정말 연약하고 불안하며 허망한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우리 안에 있는 지독한 죄성을 더욱 보게 된다. 더 순전해지며, 더 죄를 미워할수록 우리에게 남아있는 죄의 흔적은 분명해지고, 우리를 낙담하게 하려는 강력한 세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의 굴곡진 삶이 그의 구원의 확실성을 감소시키지 못한다. 원래 이 땅에서 성도는 불완전한 삶을 산다. 그래서 우리가 의지할 존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와 연합하신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붙잡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담대하게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도와 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바로 연합을 근거로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셋째, 이 연합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역동적인 선의 추구를 만들어 낸다. 앞에서 연합이 사람의 주관적이며 적극적인 개입이 존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람은 그저 의지가 없는 기계일 뿐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연합이 객관적 실현이기 때문에 사람의 자발성에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것 아닌가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사실 구원론 이단의 대부분은 이런 입장 때문에 개혁파의 구원론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오해이며 잘못이다. 그들의 잘못은 먼저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본질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한다면, 사람에게는 남은 영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에게 독립적으로 결정할 영역이 반드시 있어야 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일에 그저 배경처럼 개입하시지,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어떻게 하실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는 하나님을 사람과 같은 수준에서 서로 경쟁하며 일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다. 만물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을 향하고, 당연히 사람도 하나님을 향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란 목적을 위해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독립적 가치를 주장한다는 것은 모순일 뿐이다.

하나님은 원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리고 사람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서 항상 자발성과 적극성과 주도성을 가지고 행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 방식은 사람의 자발성과 적극성과 주도성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알지 못하게 일하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은 신비롭고 은밀해서 우리가 보통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의 인식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합은 결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사람을 결코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이 실현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적 추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영적 삶의 지식과 추구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갖는 공통의 경험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이 커져 간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성경을 더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묵상한다. 설교도 열심히 듣고, 적용해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부담이 된다. 아니 미워하면 안 될 것 같아 미칠 것 같은 경험도 한다. 예전에는 죄 짓는 것이 별 어려움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고민이 된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죄의 반대 방향으로 즉 선을 향하여 열심히 움직이게 한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합의 결과는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경험이며, 영적 삶을 향한 지식과 욕구를 갖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이것은 모든 신자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역동적 선의 추구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적 삶의 지식과 욕구를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신비로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영적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