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향기 11] 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7_김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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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7

하늘 대왕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의 소군주, 대리자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신다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라는 사실, 세상 역사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왕국을 향해 움직이는 사실, 하나님께서 언약의 주로서 인간에게 배타적 충성을 요구하시는 하늘의 대왕으로 계시되는 사실, 하나님께 “왕”이란 칭호가 사용되고 그분께 왕적인 직능 곧 “재판”과 “통치”가 돌려지는 사실, 하나님이 고대 근동의 왕들과 같이 백성을 인도하고 먹이는 “목자”로 그려지는 사실, 하나님이 백성들을 위해 싸우시고 그들을 적들의 손에서 건지시는 구원자로 소개되는 사실 등이 모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증거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해 통치권을 주장하시며 온 세상이 자신의 통치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얻도록 하시는 하늘의 대주제요 왕이시다. 이는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가 구약의 모든 내용을 통합하는 신학적 구심점임을 확인해준다.

여기서 하나님이 통치를 펼치시는 방식에 대해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인간역사를 주권적으로 다스려 자신의 왕국계획을 성취하신다.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무한하시므로 누구의 조언이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으신다(사 40:13-14 참조). 하나님은 모든 일을 홀로 이루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왕국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인간 대리자를 사용하신다. 창세기 1:26-28이 이것을 가르친다. 이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되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셨다.

“형상”(ṣelem)과 “모양”(demût)의 의미가 무엇이든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다스림”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26절). “다스리다”란 말은 히브리어 “라다”(rādāh)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구약에서 왕의 통치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된다.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왕상 4:24 [5:4]). 시편 72:8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통치를 이렇게 노래한다: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시편 110:2에는 멜기세댁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왕의 통치가 “라다”로 묘사된다. 이러한 예들은 창조시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스림”의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신 것의 의미를 밝혀준다. 인간은 왕으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부여된 왕의 지위가 전제군주나 독재자의 그것과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 아래 있다. 자신을 높이거나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삿 21:25) 행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왕권과 거리가 멀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자다. 인간의 통치행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이것이 처음 인간에게 부여된 왕직의 궁극적 목표다. 성경의 첫 장이 이것을 가르친다. 창세기 1:26에 의하면 인간은 다스리는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 이는 만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통치행위가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다스리는 자로서의 인간에게 본질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beṣelem)에서 “따라”로 번역된 전치사(be)는 형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영역본에서는 대개(ESV, NAS, NIV 등) 이 전치사를 “in”으로 번역한다. 이는 이미 존재하는 틀 “안에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여러 주석가들(K. A Matthews, V. Hamilton, G. Wenham 등)이 이를 지지한다. 출애굽기 25:40은 이 해석을 위한 좋은 참고 구절이 된다: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betabnîtām) 할지니라.” 여기서 전치사 be는 “~에 따라”의 의미로 사용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양식(pattern)에 따라 성막을 지어야 한다. 이처럼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는다. 어떤 학자(예, E. H. Merrill, H. W. Wolff)는 하나님의 형상을 기능적으로 이해하여 “다스리는 기능”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세기 1:26의 구문은 다스림이 형상을 따라 창조된 목적/결과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형상과 다스림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처럼 그 둘을 따로 분리하여 형상을 존재론적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이는 태양의 존재와 기능을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형상은 존재론적이면서 동시에 기능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덤브렐(W. J. Dumbrell)이 말한 것처럼 “본질을 기능과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형상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영적 특성(엡 4:24; 골 3:10 참조)이면서 다스림의 기능까지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지식과 의와 거룩의 속성을 가지시고 다스리시는 하늘의 대왕이시듯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 또한 하나님께 부여받은 영적, 도덕적 특성을 가지고 다스리는 왕이다.

위의 설명은 인간의 육체성이 형상과는 무관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을 영과 육체로 나누고 후자를 무시하거나 저급하게 여기는 이원론은 구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구약은 영과 육체를 포함한 전체로서의 인간, 곧 심신일체(psychosomatic unity)로서의 인간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고 할 때 영과 육의 통일체로서 인간을 생각해야 한다. 칼빈(J. Calvin)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부분에, 심지어 몸 자체에도 얼마의 섬광이 빛난다.”

다른 한편, “형상”이 구약에서 주로 삼차원의 물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는 해석도 있다. 이때도 하나님이 물리적 형체를 가지신 분이란 의미는 아니다. 다만 영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인간이 물리적 구조를 가진 “형상”이란 의미다. 이 해석은 “형상”에 접두된 전치사 be를 규범의 의미(“~에 따라”)가 아닌 본질의 의미(“~로서”)로 이해한다. 이 경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참고 구절은 출애굽기 6:3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be’l šaddāy) 나타났으나….” 여기서 전치사 be는 본질의 의미(“~로서”)로 사용된다. 창세기 1:26에서도 be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이 해석을 따르면 인간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다(고전 11:7 참조). 여기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심신일체인 인간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묘사(representation)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표하는 대리자(representative)라는 의미다. 인간은 하나님의 책임 있는 대리자로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

위에 소개한 두 해석에서 논점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달라진다. 첫째 해석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God’s image bearer)로서 왕의 역할을, 둘째 해석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 대리자로서 왕의 역할을 한다.

전자가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는 인간을 생각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인간을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참되고 충실하게 대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두 해석은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같은 인간 이해를 산출한다. 무엇보다도 두 해석은 인간을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는 왕으로 창조된 존재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같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하늘 대왕의 뜻을 받드는 지상의 소군주다. 하나님은 인간 대리자를 통해 자신의 왕국을 세우신다. 구약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세우실 왕국에 초점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