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권중분 권사 (노원 성도교회)
하나님 나라, 행복한 만남을 소망하며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호주에 갔을 때, 양과 소가 드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차로 달리는 몇 시간 동안 초지와 목장들이 쭉 이어졌다. 방목에 가깝지만 나무나 철조망으로 쳐진 울타리는 있었다, 목장의 규모가 커서 양과 소가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으며 목이 마르면 목장에 딸려 있는 호수에 가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목장 군데군데에 키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었고 짐승들은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쉬기도 했다.
광활한 초원을 지나서 남태평양이 가까워 오고 필립 섬(Philip Island)에 다다랐다. 뜨거운 태양열에 누렇게 색이 바랜 평원이 이어졌다. 들판을 지나는 동안 캥거루들이 많이 출현했다. 캥거루들은 차량이나 사람들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듯 자유롭고 편안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바다와 접한 언덕과 들판에는 아주 조그만 둥근 지붕에 좁은 굴이 뚫려있는 페어리 펭귄(Fairy Penguin, 꼬마 펭귄이라고도 함)의 보금자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펭귄들의 마을은 바닷가를 따라 아주 길고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둥근 지붕에는 파릇파릇하게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펭귄의 집들 사이로 야생 토끼들의 집들이 드문드문 위치해 있었다. 가끔 낮잠을 자고 일어나 고개를 내밀고 밖을 기웃거리는 아기 펭귄도 보였다. 토끼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풀을 뜯어 먹거나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오후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필립섬을 찾은 목적인 페어리 펭귄들과의 만남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그만 펭귄들의 집들과 토끼들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은 바닷가의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부근까지 쭉 이어졌다. 평화로운 풍경들 사이로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 바닷가에 도착했다.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은빛 갈매기들이 바다와 백사장이 맞닿은 곳에서 무리를 지어 끼룩거리고 있었다. 대장 갈매기가 저녁 점호라도 하는지 백사장에는 갈매기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났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기온이 낮아져서 추위를 느껴졌다. 준비해간 두꺼운 겨울옷을 걸쳐 입었다. 펭귄은 아침 일찍이 바다에 나가 있다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귀가한다고 했다. 펭귄의 퍼레이드를 보기위해 다국적의 사람들이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관람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갈매기들의 소리와 다양한 언어들이 파도 소리와 함께 귓가에 들려왔다. 갑자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가며 앞자리에 앉은 노신사의 옷에 분비물을 배설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대단한 행운이라고 덕담을 하자 그는 조금 당황해 보였지만 행운을 맞았다면서 이내 웃는다. 어느새 동쪽 하늘에는 둥근 달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영어로 관람 예절과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이어서 관람을 돕기 위해 안내원이 백사장에 서서 설명한다. 펭귄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라고 거듭 부탁했다.
갈매기들이 여전히 백사장에 모여 서성이는 가운데, 썰물 시기여서 파도가 바다 쪽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의 검은 윤곽이 어슴푸레 보였다. 전등이 몇 개 켜졌지만 은은한 정도의 밝기였다. 드디어 바위들의 군락과 모래사장 곳곳에서 페어리 펭귄들이 하나 둘 나타나 점호를 시작했다. 필립섬의 2만 여 마리의 펭귄들의 귀가는 각각 20명 정도로 무리를 지어 함께 행진을 하며 돌보며 이루어진다고 했다. 펭귄들이 귀가 행진을 시작하자 사람들도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귀여운 아기 펭귄들이 마을 입구나 좁은 길과 집 앞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이란 펭귄의 세계에서도 얼마나 간절해 보이던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이 펭귄의 마을을 가로질러 나있지만 아기 펭귄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바다에 나갔던 부모 펭귄이 하나 둘 집으로 갔다. 아빠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펭귄은 마을의 어른 펭귄이 지나갈 때는 더욱 애절한 모습으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가 오면 아기 펭귄은 기뻐하며 맞이했다. 필립섬 펭귄들은 아름답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펭귄의 기다림과 만남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10리 길을 걸어서 장에 가시면,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던 추억이 생각났다. 친구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장에 갔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 집으로 달려가 마당 끝에서 서성이거나 턱을 괴고 앉아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다.
가끔 혼자 장에 간 어머니는 장에서 마련한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오셨다. 읍내로 이어진 길이 훤히 보이는 마당 끝에 서 있다가 어머니가 보이면 뛰어갔다. 어머니는 장에서 아무것도 사드시지 않고 집으로 오시곤 했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장에 갈 때면 “엄마 과자 사와야 해.”라며 가난한 어머니를 졸랐다. 넉넉하지 못한 농가여서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자녀들의 등록금도 제때 마련하기 힘들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려 소소한 먹을거리를 사 오셨다. 무엇보다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건네던 사랑의 언어가 좋았다. “엄마 많이 기다렸구나, 우리 딸, 집에 가서 보따리에 뭐가 있나 풀어 보재이.”라는 말.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고 기다린다. 실수하고 잘못할 때도 많지만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행복한 만남을 소망하며 오늘도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