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시골의 이웃관계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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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이웃관계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농어촌 마을의 이웃 범위는 마을 단위이다. 도시의 이웃은 얇은 벽 하나를 두고 가장 가까운 거리지만 서로를 모르는 먼 이웃일 수가 있다. 시골의 이웃은 단독주택의 울타리 너머지만 마을 곳곳에 경작하는 논과 밭도 이웃일 수밖에 없다. 일하다 새참을 먹는 경우는 소리쳐 부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때 품앗이로 고용한 집에서 음식을 마련하면 호락질을 돕는 일꾼들을 먼저 부른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처럼 어려울 때 같이 하는 이웃은 세대를 이어 평생 친구 관계이다. 같은 마을 공동체에서 살다 보면 작은 피해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모든 세상 삶이 그렇듯이 일방적인 통행은 없다. 하지만 타 지역에서 온 경우나 신앙을 가졌다는 약점이 있다면 일방적인 손해를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집도 논밭도 서너 군데 이웃과 접하고 있어 사소한 일이라도 생각에 따라 피차 감정을 상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필자가 이 동네로 와 삼 년 후, 담 안 텃밭 공간에 사택을 먼저 건축했다. 그리고 기존 주택을 허물고 교회당을 짓기 위해 굴삭기로 터를 잡았다. 철거한 집이 남향으로 있어 교회당도 남향으로 기초 작업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 말이 없던 바로 이웃 주민이 앞을 가린다고 반대했다. 전에는 텃밭으로 앞이 트였지만 사택이 신축돼 가리자 교회당도 그럴 것 같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가만히 듣고 보니 필자의 마음속에 ‘주민들을 위해 살기로 한 내가 주민들에게 피해나 반대되는 일을 하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왔다. 그 자리에서 수락하고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법적으로는 따질 수 있지만 시골의 정서는 법보다도 주민들의 관습법이 우선이다.

가로로 세울 건물이 세로로 기초를 하면 뒷집의 전망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바닥 평수가 25평이 나왔고 너무 적은 공간이라서 준 이층으로 공사를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층보다는 더 많은 공사비를 지불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이층이라서 작은 도서관과 다락을 만들 수 있어 결과는 오히려 복이 되었다. 이 외에 정원의 감나무도 전 주인이 있을 때부터 키운 나무지만 시야를 가린다며 불평을 해서 베어 내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중 그 이웃집에서 야외 화장실을 짓는데 약간의 토지가 얼치기 되어 지적도면상 교회의 토지가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 양보를 해 주었다. 담이 오래되어 무너지자 양쪽에서 공동 경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필자가 일방적으로 쌓아 주었다. 이러한 이유는 건축이나 어떤 이득을 보려는 목적이 아닌 사람을 구원하려는 목적으로 이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작은 문제로 다투기보다 양보하고 손해 봐도 화평이 더 큰 가치임을 안다.

그분이 지금은 전도가 되어 열심히 출석하며 집사 직분을 받았다. 경작하는 밭의 이웃은 지금도 이웃의 작은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연농법으로 하다 보니 여러 잡풀이 많이 자란다. 그러다가 꽃무릇이 필 때쯤에는 예초기로 풀을 제거하는데 가장 걸림돌은 밭에 널려져 있는 돌멩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예초기 날에 돌은 위험요소이다. 경작 중 돌멩이는 보이는 족족 제거하며 위험을 미리 방지하였다.

그런데 이웃 주민들이 자기 밭 돌덩이를 필자의 밭둑에다 버렸다. 자신의 편리를 위해 남의 밭에는 피해를 주는 꼴이다. 그 외에도 주위 분들이 농자재 쓰레기를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게 다반사다. 특별히 농민들이 악해서라기보다 수십 년 살아온 습관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런 분들에게 일일이 주의를 주거나 알려 주면 괜히 관계만 나빠질 뿐 고쳐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말없이 돌도 치우고 쓰레기도 치우며 나름대로 본이 되고자 할 뿐이다.

우리 밭에는 장비가 못 드는 논두렁 같은 작은 경계만 있는 곳에 굴삭기가 들어서도록 길을 만들었다. 윗밭에도 장비가 드나들게 배려한 것이다. 길이란 만들어 놓으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한다. 그런데 옆의 밭에서 해마다 야금야금 깎아 들어오고 있었다. 전에 경계선에 작은 나무가 있었는데 어느새 없어지고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하고 있다. 필요시 측량하면 다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기회만 주어지면 작은 욕심으로 죄의 내리막길로 가는 게 보인다. 시골에서는 서로를 잘 알기에 더 잘 발견하고 드러나는 모습이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은 영적인 진리지만 이 세상의 일반 생활에서도 문자 그대로도 이루어짐을 여러 간증을 통해서 들었다. 말씀이 현실이 되는 삶을 경험한다면 이 또한 믿음생활의 즐거움이다.

최근 귀농, 귀촌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다수가 토착민들과의 갈등에 힘들어 떠나는 경우이다. 도시와 문화, 정서가 다르지만 조금 손해 보는 맘으로 접근하면 여러 불필요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물질로 보상할 수 없는 더 큰 자연의 혜택을 누린다. 작은 것을 양보하면 더 많고 유익한 보물을 얻는 것이 바로 시골 이웃들과의 관계이다.